“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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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藥師庵)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라도 광산(光山)의 무등산(無等山)에 있는 사찰. 철감선사(澈鑑禪師) 도윤(道允)이 증심사(證心寺)를 창건하기 위해 지었다 하며, 지금의 광주광역시(光州光域市)에 속함.
한국>통일신라 , 전라도>광산 , 유적>건물>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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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만고(藥山漫稿)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인 오광운(吳光運)의 유고. 20권 9책. 목판본. 후손 오병서(吳炳序) 등이 1924년 대구(大邱)에서 간행함.
1924 한국>근대 , 경상도>대구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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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야계(若耶溪)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에 있는 하천 이름.
중국 , 지명>자연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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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포유고(藥圃遺稿)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인 이해수(李海壽)의 문집. 7권 3책. 목판본. 저자의 외6대손인 조영세(趙榮世)가 안동 부사(安東府使)로 있을 때 간행함. 이재(李縡)의 서문이 있음.
172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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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포집(藥圃集)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인 정탁(鄭琢)의 시문집. 원집(原集)은 5대손 정옥(鄭玉)이 1760년(영조 36)에 해주(海州)에서 목판으로 7권 4책을 초간(初刊)하였으며, 속집(續集)은 후손 정광익(鄭光翊)이 1818년(순조 18) 도정서원(道正書院)에서 목판으로 4권 2책을 초간함.
1760 한국>조선후기 , 황해도>해주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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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梁)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의 세 번째 왕조. 남제(南齊) 말에 옹주 자사(雍州刺史) 소연(蕭衍)이 화제(和帝)에게 선양받아 세운 나라로, 6대 56년간 존속.
502~557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시간>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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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갈(楊^葛)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신종(神宗) 때의 문신인 양박(楊博)과 갈수례(葛守禮)를 함께 부르는 말. 당대 명신으로 일컬어짐.
중국>명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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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마(揚^馬)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인 양웅(揚雄)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함께 부르는 말. 부(賦)에 뛰어난 인물들로, 국왕에게 부를 지어 바침.
중국>전한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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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묵(楊^墨)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魏) 나라의 도가(道家) 철학자인 양주(楊朱)와 노(魯) 나라의 사상가로 묵가(墨家)의 창시자인 묵적(墨翟)을 함께 부르는 말. 맹자(孟子) 이후 유학자들이 인의(仁義)를 해치는 이단 학설로 여겨 배척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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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楊^謝)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인 양시(楊時)와 사양좌(謝良佐)를 함께 부르는 말. 이정(二程)의 문인을 말함.
중국>송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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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楊^尹)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인 양시(楊時)와 윤돈(尹焞)을 함께 부르는 말. 정자(程子)의 문인임.
중국>송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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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楊^李)
중국 당(唐) 나라의 재상인 양국충(楊國忠)과 이임보(李林甫)를 함께 부르는 말. 실정(失政)과 전횡(專橫)으로 정사를 어지럽힌 신하를 일컬음.
중국>당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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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채(楊^蔡)
중국 송(宋) 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제자인 양즙(楊楫)과 채원정(蔡元定)을 함께 부르는 말.
중국>송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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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良^平)
중국 전한(前漢)의 공신인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을 함께 부르는 말. 한(漢) 나라 통일에 공을 세운 두 신하를 일컬음.
중국>전한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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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揚^韓)
중국 전한(前漢)의 학자인 양웅(揚雄)과 당(唐) 나라의 문인인 한유(韓愈)를 함께 부르는 말. 유학(儒學)의 이론인 성선설(性善說)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 학자.
중국>당ㅣ중국>전한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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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간(楊簡)
중국 송(宋) 나라의 문신ㆍ학자. 육구연(陸九淵)의 제자로, 스승의 심(心)은 곧 이(理)라는 심즉리(心卽理)의 사상을 이어받음. 보모각 학사(寶謨閣學士) 등을 지냄.
1141~1225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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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거(楊琚)
중국 명(明) 나라 영종(英宗) 때의 문신. 강서(江西) 태화(泰和) 사람으로 병부 주사(兵部主事)를 지냄.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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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거원(楊巨源)
중국 당(唐) 나라 덕종(德宗)~문종(文宗) 때의 문신ㆍ시인. 국자사업(國子司業) 등을 지내고, 백거이(白居易)ㆍ원진(元稹)ㆍ유우석(劉禹錫) 등과 교유함. 시에 능하고, 특히 음률(音律)을 중시한 작품이 많음.
755~? 중국>당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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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걸(楊傑)
중국 송(宋) 인종(仁宗)~철종(哲宗) 때의 문신ㆍ학자. 고려 의천(義天)이 송 나라에 갔을 때 주객원외랑(主客員外郞)의 신분으로 의천 일행을 관반(館伴)하여 강남 일원까지 수종(隨從)하였음.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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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림(楊景霖)
조선 전기의 유학.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彥)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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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우(梁慶遇)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양대박(梁大樸)의 아들로, 부친을 따라 종군함. 1597년(선조 30)에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교리(校理)ㆍ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 등을 지냄.
156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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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지(楊敬之)
중국 당(唐) 나라의 문신ㆍ문인. 검교 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 등을 지내고, 두 아들 양융(楊戎)ㆍ양대(楊戴)와 함께 문명(文名)을 떨침. 일찍이 〈화산부(華山賦)〉를 지어 한유(韓愈)ㆍ이덕유(李德裕) 등으로부터 칭탄을 받음.
중국>당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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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충(楊敬忠)
중국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문신. 하서 절도사(河西節度使) 등을 지냈으며, 선악(仙樂)인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지어 바쳤다고 함.
중국>당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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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성(楊繼盛)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 때의 문신. 형부 원외랑(刑部員外郞) 등을 지냄. 엄숭(嚴嵩)이 권력을 전횡할 때 세 번이나 상소하여 그의 죄를 탄핵하다가 하옥된 후 죽임을 당함.
1516~1555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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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종(楊繼宗)
중국 명(明) 나라 영종(英宗)~효종(孝宗) 때의 문신.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중관(中官) 및 제신(諸臣) 들의 탐오와 비리를 지적하였으므로 고관들의 미움을 받았으며, 좌첨도어사(左僉都御史) 등을 역임함.
?~1488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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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집(陽谷集)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인 소세양(蘇世讓)의 시문집. 14권 7책. 목판본. 1571년(선조 4)에 아들 소수(蘇遂)가 저자의 유문(遺文)을 모아 편집하여 황해도 곡산(谷山)에서 초간(初刊)함.
1571 한국>조선전기 , 황해도>곡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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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襄公)@춘추전국(晉)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 나라의 제후. 문공(文公)의 아들. 문공이 죽고 장사 지내기 전에 출병(出兵)하게 되자, 상복을 검게 물들여 입고 전쟁에 나가 진(秦) 나라를 격퇴함.
?~B.C.621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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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襄公)@춘추전국(제)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제후. 재위 B.C.697~B.C.686. 재위 중에 노(魯) 나라와 위(衛) 나라를 정벌하였으나, 후일 연칭(連稱)과 공손무지(公孫无知)에게 시해됨.
?~B.C.686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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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襄公)@춘추전국(송)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宋) 나라의 제후. 재위 B.C.651~B.C.637. 패자(覇者)가 되기 위해 초(楚) 나라의 군대와 홍수(泓水)에서 싸울 때 인정을 베풀다가 패함.
?~B.C.637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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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襄公)@춘추전국(衛)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衛) 나라의 제후. 재위 B.C.543~B.C.535. 헌공(獻公)의 아들로, 숙부인 상공(殤公)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림.
?~B.C.535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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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梁灌)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무신. 덕천 군수(德川郡守) 등을 거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고, 근면하고 청렴하여 청백리에 녹선됨.
1437~150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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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楊口)
강원도 중부에 있는 고을 이름. 내륙 산간에 위치하며, 산세가 험준함.
강원도>양구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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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거(梁丘據)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 경공(景公) 때의 대부. 경공의 총애를 받았으며, 경공이 노(魯) 나라 정공(定公)과 회동할 때 경공을 따라 그 자리에 참석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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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주(梁九疇)
조선 전기의 문신.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을 지낸 양성지(梁誠之)의 아버지. 청풍 군사(淸風郡事)를 지냈으며,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에 추증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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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하(梁丘賀)
중국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의 문신ㆍ학자. 경방(京房)에게 《주역(周易)》을 수학하고, 선제의 신망을 받아 소부(少府) 등을 지냈으며, 공신(功臣)으로 인정받아 기린각(麒麟閣)에 그의 초상이 걸렸음.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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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충(楊國忠)
중국 당(唐) 나라의 재상. 장역지(張易之)의 사위이며, 양귀비(楊貴妃)의 친척. 이임보(李林甫)와 결탁하여 현종(玄宗)에게 중용되었으나, 실정(失政)과 전횡(專橫)으로 정사를 어지럽히고, 안녹산(安祿山)과의 반목으로 안사(安史)의 난(亂)을 초래함.
?~756 중국>당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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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羊權)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도사. 양침(羊忱)의 아들로, 모산(茅山)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터득함. 구의산(九嶷山)의 선녀가 그에게 신선술(神仙術)과 환약(丸藥) 등을 주고 갔다는 일화가 전함.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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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楊貴妃)
중국 당(唐) 나라 현종(玄宗)의 비(妃). 본래 현종의 아들인 이모(李瑁)의 비로 궁에 들어왔으나 현종의 사랑을 받아 현종의 비가 됨. 오빠인 양국충(楊國忠)과 함께 정사를 전횡하다가 안사(安史)의 난(亂) 때 국난 초래를 문책받아 죽음.
719~756 중국>당 , 중국 , 인명>왕실>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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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楊根)
경기도 중부 동쪽에 위치한 고을 이름. 현재는 경기도 양평군(楊平郡)에 속함.
경기도>양근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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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서원(楊根書院)
황해도 해주(海州)에 있었던 서원. 주세붕(周世鵬)을 배향하였음.
한국>조선후기 , 황해도>해주 , 유적>건물>서원,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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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梁冀)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의 무신. 양황후(梁皇后)의 오빠로, 권력을 남용하여 절제(節帝)를 옹립하고 독살하였으나 환제(桓帝) 때에 실각하여 자살함.
?~15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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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楊耆)
중국 송(宋) 나라 때의 문인. 서촉(西蜀)의 수재(秀才)로, 소식(蘇軾)의 시에 빈궁한 선비로 거론됨.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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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楊起)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귀화인. 본래 원(元) 나라의 대부로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을 지냈고,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귀화함. 청주양씨(淸州楊氏)의 시조.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기타인명>귀화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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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讓寧大君)
조선 태종(太宗)의 첫째 아들. 1404년(태종 4)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자유분방한 성품과 행동으로 인해 유정현(柳廷顯) 등의 청원으로 폐위되고, 아우인 충녕대군(忠寧大君)에게 양위됨.
1394~146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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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노(梁櫨)
조선 전기의 문신. 관직은 찰방(察訪)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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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담(羊曇)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문인. 사안(謝安)의 생질로, 시문(詩文)에 능하였음. 사안의 사랑을 받다가 그가 죽자 서주(西州)의 길을 차마 지나가지 못하였는데, 어느날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서주의 성문에 이르자 슬퍼하며 통곡하고 떠나갔다 함.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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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楊戴)
중국 당(唐) 나라 때의 문인. 양경지(楊敬之)의 아들로, 문종(文宗) 때 아버지는 태상소경(太常少卿)이 되고 형 양융(楊戎)과 더불어 등과(登科)하여, 당시에 ‘양가삼희(‘楊家三喜)’로 일컬어졌으며, 함께 문명(文名)을 떨침.
중국>당 , 중국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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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박(梁大樸)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남원(南原).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아들 양경우(梁慶遇)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담양(潭陽)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高敬命)을 맹주로 추대한 뒤 종사관(從事官)으로 활동함.
1544~1592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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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부(梁德符)
조선 세종(世宗) 때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정언(正言) 성자량(成自諒)의 사위이며, 양여창(梁汝昌)의 아버지로, 별시위(別侍衛)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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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楊滔)
중국 당(唐) 나라의 문신. 중사(中舍)로 있을 때, 급히 조서를 만들려고 창고의 창문을 뚫었다고 하여 착창학사(斲窓學士)라는 별칭을 얻음.
중국>당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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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부(兩都賦)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ㆍ학자인 반고(班固)가 지은 부(賦). 서도부(西都賦)와 동도부(東都賦) 두 편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는데, 서도(西都)인 장안(長安)과 동도(東都)인 낙양(洛陽)의 역사ㆍ지형ㆍ풍물 등을 소재로 하여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 서술함.
중국>후한 , 중국 , 문헌>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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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楊墩)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인. 1498년(연산군 4)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함.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사표(師表)가 됨.
1461~1512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임실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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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무(楊東茂)
고려 원종(元宗) 때의 무신. 당악군(唐岳君) 양포(楊浦)의 아버지로, 1270년(원종 11) 진도(珍島)에 웅거한 삼별초(三別抄)를 토평할 때 참전하여 포위된 김방경(金方慶)을 구하는 등 공을 세웠으며, 이부 상서(吏部尙書) 등을 지냄.
한국>고려후기 , 평안도>중화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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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재(梁棟材)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낸 양준(梁遵)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大提學)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제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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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득의(楊得意)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문신. 구감(狗監)을 역임하였으며, 무제가 〈자허부(子虛賦)〉를 읽은 후 그 지은이와 동시대에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자, 지은이이자 자신의 벗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추천함.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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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량(楊諒)
중국 수(隋) 나라 문제(文帝)의 넷째 아들. 수 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고구려를 침공함.
중국>수 , 중국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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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렴(楊廉)
중국 명(明) 나라 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양숭(楊崇)의 아들로, 성력(星曆)과 산수(算數)에 능함.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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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류소만요(楊柳小蠻腰)
버들가지 같은 소만(小蠻)의 허리. 당(唐) 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버들가지를 자신의 가기(家妓) 중에 춤을 잘 추는 소만의 허리에 비유하여 읊은 시에서 유래한 말로, 가느다란 버들가지를 뜻함.
중국>당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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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릉정(陽陵井)
경기도 개성(開城) 남쪽 8리 지점에 있는 우물 이름. 개성대정(開城大井)ㆍ광명사정(廣明寺井)과 함께 개성의 삼대신정(三大神井)으로 일컬어지며, 1370년(공민왕 19) 명(明) 나라의 사신인 도사(道士) 서사호(徐師昊)가 이곳에 와서 제사지냄.
한국>고려시대 , 경기도>개성 , 유적>기타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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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리(楊萬里)
중국 송(宋) 나라의 문신ㆍ시인. 비서감(秘書監)을 지내고, 사부(詞賦)에 뛰어나 육유(陸游)ㆍ범성대(范成大)ㆍ우무(尤袤)와 더불어 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로 일컬어짐.
1127~1279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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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용(梁曼容)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양산축(梁山軸)의 아들이며, 강항(姜沆)ㆍ박동열(朴東說)의 문인.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고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책록됨.
1598~1651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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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춘(楊萬春)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때의 안시성(安市城) 성주(城主). 지모(智謀)와 용기(勇氣)가 뛰어났으며,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정변과 당(唐) 나라 태종(太宗)의 침공 때 불굴의 의지로 싸워 승리함.
한국>고구려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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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매(楊梅)
조선 전기의 문신 최연(崔演)의 《간재집(艮齋集)》에 실려 있는 〈국수재전(麴秀才傳)〉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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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楊沔)
조선 세조(世祖)~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양후(楊厚)의 손자이며 양자순(楊子淳)의 아들. 교리(校理)ㆍ첨정(僉正) 등을 지냄.
1444~1500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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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陽明學)
중국 명(明) 나라의 학자 왕수인(王守仁)이 주창한 유가철학(儒家哲學)의 한 학파. 정주이학(程朱理學)과 대립되는 성격으로, 육구연(陸九淵)의 학설을 계승하여 심즉리(心卽理)ㆍ치양지(致良知)ㆍ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창함.
중국>명 , 중국 , 사상>이론>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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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소왕(涼武昭王)
중국 남북조시대 서량(西涼)의 초대 왕. 재위 400~417. 재위 중 우병우농(寓兵于農)과 문화교육 정책을 시행하여 부국강병을 꾀함. 문학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임.
351~417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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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박(楊博)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신종(神宗) 때의 문신. 세종을 보좌하여 내외직을 오가며 정무에 힘쓰고 외구 및 변방 수비에 공로를 세움.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을 지내며 좌도어사(左都御史) 갈수례(葛守禮)와 함께 당대 명신으로 불림.
?~1574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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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楊方)
중국 송(宋) 나라의 문신. 주자(朱子)의 문인. 회계(會稽) 사람으로, 고량 태수(高凉太守)를 지냄.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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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형(楊邦亨)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무신. 1595년(선조 28) 흠차책봉일본정사(欽差冊封日本正使) 이종성(李宗城)을 따라 부사(副使)로 조선에 나왔으며, 도중에 이종성이 도망치자 정사가 되어 일본에 가서 풍신수길(豐臣秀吉)과 협상하였으나 실패함.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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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선(楊拜善)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중화(中和)로,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양희지(楊熙止)의 아들. 몸가짐을 삼가며 문예(文藝)에 뛰어나 김안국(金安國)의 천거를 받았으며, 이황(李滉)ㆍ최연(崔演)ㆍ안관(安瓘) 등 당대 명사들과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대구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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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백연(楊伯淵)
고려 공민왕(恭愍王)~우왕(禑王) 때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흥왕사(興王寺)의 변(變)을 평정한 공으로 추성익위공신(推誠翊衛功臣)에 책록되고, 여러 차례 왜구(倭寇)를 격퇴하였으나, 후에 이인임(李仁任) 등의 미움을 받아 합주(陜州)로 귀양 갔다가 살해됨.
?~1379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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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백화(楊白花)
악부(樂府) 잡곡가사(雜曲歌辭)의 하나.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의 명장(名將)인 양대안(楊大眼)의 아들 양화(楊華)를 추모하기 위해 선무영황후(宣武靈皇后)가 지은 노래.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문헌>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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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楊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 양진(楊震)의 아들로, 역학(易學)과 《서전(書傳)》에 밝고, 매우 청렴하여 술과 여색과 돈에 미혹되지 않았다 하여 ‘삼불혹(三不惑)’으로 일컬어졌으며, 태위(太尉) 등을 지냄.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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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楊復)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주희(朱熹)의 문인으로 《의례도(儀禮圖)》를 저술하고, 《가례(家禮)》의 주석을 냄.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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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楊溥)
중국 명(明) 나라 혜제(惠帝)~영종(英宗) 때의 문신. 무영전 대학사(武英殿大學士) 등을 지내고, 양우(楊寓)ㆍ양영(楊榮)과 함께 정사를 잘 보살펴 ‘삼양(三楊)’으로 일컬어짐.
1372~1446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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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기(楊士奇)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양희수(楊希洙)의 아들로, 원주(原州) 등 7개 읍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으며, 형 양사준(楊士俊)ㆍ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시(詩)에 뛰어났음.
1531~158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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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언(楊士彦)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청주(淸州). 회양(淮陽)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 자연을 즐기고, 시(詩)ㆍ서(書)에 능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ㆍ김구(金絿)ㆍ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사대(四大) 서예가로 불림.
1517~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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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원(梁泗源)
조선 전기의 문신. 양산보(梁山甫)의 부친. 본관은 제주(濟州). 은덕(隱德)이 있어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음.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창평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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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준(楊士俊)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양희수(楊希洙)의 아들로, 형 양사언(楊士彦), 동생 양사기(楊士奇)와 더불어 문명(文名)을 날려 당시에 중국의 소순(蘇洵)ㆍ소식(蘇軾)ㆍ소철(蘇轍)에 비유되었으며, 정랑(正郞)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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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형(楊士衡)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노진(盧禛)ㆍ유희춘(柳希春)의 문인으로, 영광 군수(靈光郡守) 등을 지냄. 임진왜란 때 군량을 조달하고 윤두수(尹斗壽)를 보좌하였으며 죽은 뒤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추록됨.
1547~159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순창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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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梁山)
경상도 남동부에 위치한 고을 이름.
경상도>양산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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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룡(梁山龍)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幼學)ㆍ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제민(宋濟民)ㆍ양산숙(梁山璹)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함.
1552~?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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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립(梁山立)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양응기(梁應箕)의 장자(長子). 효천(孝薦)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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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보(梁山甫)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1519년(중종 14)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가 실각하자 귀향하여 소쇄원(瀟灑園)을 짓고 한평생 은거함.
1503~155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담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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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수(梁山秀)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양응기(梁應箕)의 아들.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냈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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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숙(梁山璹)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경전공부에 전심하여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병학(兵學)에 통달함.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다가 진주성(晉州城)에서 순절함.
1561~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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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욱(梁山旭)
조선 선조(宣祖) 때의 의사(義士)ㆍ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언림(彦霖) 양응필(梁應畢)의 아들. 임진왜란 때에 의거하였으며, 예빈시 봉사(禮賓寺奉事)을 지냈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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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준(梁山浚)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 양응기(梁應箕)의 아들로, 예빈시 봉사(禮賓寺奉事)를 지냈으나 일찍 죽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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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중(梁山重)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낸 양응태(梁應台)의 아들.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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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축(梁山軸)
조선 선조(宣祖) 때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넷째 아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진주 남쪽 삼향포(三鄕浦)에서 왜적을 만나 일가가 모두 순절함.
1571~159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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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한(梁山翰)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 양응기(梁應箕)의 아들로, 정릉 참봉(貞陵參奉)을 지냈으나 일찍 죽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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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항(梁山杭)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아들인 양응덕(梁應德)의 넷째 아들. 영해 부사(寧海府使)를 지냄.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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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해(梁山海)
조선 후기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아들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문인(門人). 학행(學行)으로 호조 참판(戶曺參判)에 추증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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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형(梁山逈)
조선 후기의 유학.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 양응기(梁應箕)의 아들.
1545~?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영암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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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후(梁山厚)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낸 양응태(梁應台)의 아들.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냄.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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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梁商)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의 무신. 순제의 국구(國舅)이며, 양기(梁冀)의 아버지. 대장군(大將軍)을 지내고, 맏딸과 둘째딸이 순제의 황후(皇后)와 귀인(貴人)이 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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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梁書)
중국 당(唐) 나라의 문신ㆍ학자인 요간(姚簡)이 편찬한 사서(史書).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로, 남북조시대 양(梁) 나라의 사대사적(四代事蹟)을 기록한 정사(正史)이며, 총 56권으로 이루어짐.
636 중국>당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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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재(梁碩材)
고려 충혜왕(忠惠王)~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로,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6대조.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금자광록대부(今紫光祿大夫)에 서품됨.
1310~? 한국>고려후기 , 전라도>제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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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
조선 전기의 학자인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이 주고받은 서신(書信) 모음집. 3권 3책. 목판본. 1558년(명종 13)부터 1570년(선조 3) 사이에 왕복한 서신으로, 기효증(奇孝曾)이 수집ㆍ정리하고, 조찬한(趙纘韓)이 초간하였으며, 기언정(奇彥鼎)이 중간함.
1614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영암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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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설힐(羊舌肹)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 도공(悼公)~소공(昭公) 때의 대부. 외국(外國)에 사신 가서나, 외국의 빈객을 접대할 때 응대(應對)를 잘하기로 명성이 높았음. 공자가 유직(遺直)이라고 칭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