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6건)
유의어(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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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壽增) - 김수증(金壽增)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김상헌(金尙憲)의 손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으로 들어가 은둔함.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음.
1624~1701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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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로(息老) - 이자현(李資玄)
고려 선종(宣宗)~인종(仁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인주(仁州).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 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春川)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함.
1061~1125 한국>고려전기 , 강원도>춘천 , 인명>관인>문신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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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암(息庵) - 이자현(李資玄)
고려 선종(宣宗)~인종(仁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인주(仁州).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 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春川)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함.
1061~1125 한국>고려전기 , 강원도>춘천 , 인명>관인>문신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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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延之)@김수증 - 김수증(金壽增)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김상헌(金尙憲)의 손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으로 들어가 은둔함.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음.
1624~1701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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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헌(叔獻)@이이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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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義菴)@이이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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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珥)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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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성(李文成)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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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李文靖)@이이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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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헌(李叔獻)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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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李栗谷)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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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愚齋)@이이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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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존(仁存) - 김인존(金仁存)
고려 선종(宣宗)~인종(仁宗) 때의 문신ㆍ학자.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중국에 여러 번 사신으로 다녔으며, 중요한 국사(國事)마다 왕의 자문역을 했음.
?~1127 한국>고려전기 , 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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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栗谷)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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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栗谷老)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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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학사(栗谷學士)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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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로(栗老)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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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옹(栗翁)@이이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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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資玄) - 이자현(李資玄)
고려 선종(宣宗)~인종(仁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인주(仁州).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 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春川)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함.
1061~1125 한국>고려전기 , 강원도>춘천 , 인명>관인>문신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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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해부자(左海夫子) - 이이(李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중앙관서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간의 갈등 해소 노력이 실패하고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자 파주(坡州)로 낙향함.
1536~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파주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