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43건)
표제어(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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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직(盧稙)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로, 남평 현감(南平縣監) 노홍우(盧弘祐)의 아들. 호조 판서(戶曹判書)ㆍ예조 판서(禮曹判書)ㆍ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이원익(李元翼)ㆍ유성룡(柳成龍)ㆍ강서(姜緖) 등과 친교(親交)함.
1536~1587 한국>조선전기 , 서울ㅣ경기도>교하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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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姜碩期)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으로,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인 강빈(姜嬪)의 아버지. 강빈 사건으로 관작을 추탈당했다가 숙종(肅宗) 때 복관(復官)됨.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1580~1643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금천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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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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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朴世堂)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이조 참판 박정(朴炡)의 아들. 실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하였으며,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하여 주자학(朱子學)을 비판함.
1629~1703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전라도>남원ㅣ경기도>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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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朴讓)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1516년(중종 11)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였으며,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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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朴宗文)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유학. 본관은 죽산(竹山)으로, 경주 판관(慶州判官)을 지낸 박적(朴勣)의 아들.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의 문인으로, 이이(李珥)ㆍ성혼(成渾)과 교유함.
1512~1565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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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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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로(金安老)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도모하다 사사(賜死)되었으며, 허항(許沆)ㆍ채무택(蔡無擇)과 함께 정유상흉(丁酉三凶)으로 일컬어짐.
1481~1537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풍덕ㅣ경기도>교하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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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
조선 순조(純祖)~철종(哲宗) 때의 문신ㆍ서화가(書畫家). 본관은 경주(慶州). 병조 참판(兵曹參判)ㆍ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지냄. 추사체(秋史體)를 대성한 명필로 예서(隸書)ㆍ행서(行書)에 능하며, 그림과 금석학(金石學) 등에도 조예가 깊음.
1786~1856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예산ㅣ경기도>과천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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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金昌集)
조선 숙종(肅宗)~경종(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협(金昌協)의 형. 노론(老論)의 대표 인물로,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냈으나, 경종의 후사로 연잉군(延礽君:영조)를 세웠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죽임을 당함.
1648~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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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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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元敬王后)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의 비(妃). 1ㆍ2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워 태종이 즉위하는 데 일조하였으나, 태종 즉위 후 빈어(嬪御) 문제와 친정 형제들을 숙청한 일로 불화함.
1365~1420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여주ㅣ서울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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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대군(月山大君)
조선 전기의 종친. 추존왕 덕종(德宗)의 맏아들이며, 성종(成宗)의 형. 권신들의 농간에 의하여 왕위계승에서 밀려나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봉되자 자연 속에 은둔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냄.
1454~1488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고양ㅣ서울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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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혼(成渾)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백인걸(白仁傑)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을 사숙하고 이이(李珥)와 도의지교를 맺음. 서인(西人) 집권 후 이조 참판 등을 지내고, 이이와 6년에 걸쳐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에 대해 논변함.
1535~159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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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대군(永昌大君)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의 열네 번째 아들. 인목왕후(仁穆王后)의 소생으로, 광해군(光海君)을 지지하던 이이첨(李爾瞻) 등의 대북파(大北派)의 무고로 강화(江華)로 유배되어 죽음을 당함.
1606~1614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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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왕후(神德王后)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계비(繼妃). 본관은 신천(信川).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康允成)의 딸로, 태조가 즉위하자 현비(顯妃)에 책봉됨.
?~1396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포천ㅣ서울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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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趙晟)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음악이론가ㆍ학자ㆍ의원. 본관은 평양(平壤). 정주 판관(定州判官) 조수함(趙守諴)의 아들이며, 조욱(趙昱)의 형.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밝았고, 군직(軍職)에 나가 의술을 가르쳤으며 편종ㆍ편경을 이정(釐正)함.
1492~1555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삭녕ㅣ서울 , 인명>기술인>의원ㅣ인명>예술인>음악인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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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경(趙宗敬)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조팽(趙彭)의 아들로, 전한(典翰)ㆍ사섬시 정(司贍寺正) 등을 지냄. 김안로의 탄핵으로 파직되자 과천(果川)으로 내려가 학문 연구에 전념함.
1495~1535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과천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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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張維)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효종비(孝宗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로,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왕을 호종함.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여 양명학적(陽明學的) 사고방식을 보임.
1587~1638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안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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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鄭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연일(延日). 판관(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沈)의 아들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인(門人). 예조 판서(禮曹判書)ㆍ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함.
1536~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창평ㅣ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