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46건)
표제어(4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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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응(都膺)
고려 말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이성계(李成桂)의 죽마지우(竹馬之友)로, 고려 말에 찬성사(贊成事)를 지내다가 조선 건국 후 상장군(上將軍)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은거함.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사람.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성주ㅣ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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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동(范世東)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금성(錦城).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내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다가 낙향하여 끝까지 절의(節義)를 지킴.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전라도>나주ㅣ경기도>개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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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귀수(邊龜壽)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 고려가 멸망하자 충절을 지킨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 중 한 명으로 전해짐.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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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해(高若海)
조선 태조(太祖)~세종(世宗) 때의 문신. 본관은 개성(開城). 대사헌(大司憲)ㆍ형조 참판(刑曹參判)ㆍ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지냄.
1377~1443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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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우(高天祐)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개성(開城). 고려 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개를 지킨 구정충(九貞忠)의 한 사람으로 도총제(都摠制) 등을 지냄. 이행(李行)의 《기우집(騎牛集)》 〈구정충록(九貞忠錄)〉에 그 행적이 보임.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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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회중(姜淮仲)
고려 우왕(禑王)~조선 세종(世宗)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고려 말에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냄. 조선 개국 이후 4차에 걸쳐 관직을 내리고 출사를 권했으나 끝내 불응함.
?~1441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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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신(權謹臣)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거(權擧)의 아들로 1540년(중종 35)의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여 훈도(訓導)ㆍ충찬위(忠贊衛)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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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金倫)
고려 충렬왕(忠烈王)~충목왕(忠穆王) 때의 문신. 충렬왕ㆍ충혜왕(忠惠王) 등을 시종해 원(元) 나라에 가 외교문제를 해결함.
1277~1348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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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언(金明彦)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개성(開城). 윤원형(尹元衡)일파가 국정을 장악하자 외직으로 전전하면서 바른 정사와 청렴결백함으로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음.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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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형(金士衡)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종(太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제1차 왕자난 때 태종의 즉위를 도움.
1333~1407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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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金成)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역적. 판사(判事) 역임. 임중보(林仲甫)가 꾸민 역모에 연좌되어 참수 당함.
?~1356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기타인명>역적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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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지(朴惇之)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세종(世宗) 때의 문신. 일본(日本)에 사신으로 가서 연해(沿海)에 침입하는 왜구(倭寇)에 대한 일을 해결함.
1341~1422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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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경(朴原鏡)
고려 우왕(禑王) 때의 재신(宰臣). 현감(縣監)을 지낸 양신지(梁信之)의 처조부(妻祖父)임.
?~1383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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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문(朴有文)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紅巾敵)이 침입하여 공민왕이 남천(南遷)할 때 호종한 공으로 신축호종공신(辛丑扈從功臣)에 책록됨.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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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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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온(金若溫)
고려 예종(睿宗)~인종(仁宗) 때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김양감(金良鑑)의 아들로, 이자겸(李資謙)과 인척이면서도 가까이하지 않음.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름.
1059~1140 한국>고려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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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광(金鍊光)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로, 심적당(心適堂) 김이상(金履祥)의 아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회양 부사(淮陽府使)로서 왜적의 침범을 당하게 되자, 절개를 지켜 도망하지 않고 적에게 참살당함.
1524~1592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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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상(金履祥)@김수련의아들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김수련(金守蓮)의 아들. 중종 때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여 통례원 통례(通禮院通禮), 덕천 군수(德川郡守) 등을 지냄. 시를 잘 지어 현재까지 전해오는 것이 많고, 개성(開城) 남산사(南山祠)에 향사됨.
1498~1576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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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金靜厚)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인재(認齋) 김현도(金玄度)의 아들이며, 최립(崔岦)의 문인(門人). 문장에 능하여 송도인(松都人)의 문사가 되었으며, 옹진 군수(甕津郡守) 재직 중 고위층의 비위를 건드려 파직당함.
1576~1640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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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金濟)
고려 후기의 문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출사(出仕)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 두문동(杜門洞) 칠십이현(七十二賢) 중 한 사람.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