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50건)
유의어(218건)
-
청로(淸老)@김상헌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청성(靑城) - 성대중(成大中)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서얼 출신으로 서얼통청운동(庶蘖通淸運動)에 힘입어 청직(淸職)에 임명됨. 홍대용(洪大容)ㆍ박지원(朴趾源) 등과 교유하여 북학사상 형성에 기여하였으며, 저서로 《청성집(靑城集)》이 있음.
1732~181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포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청야(淸爺)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청음(淸陰)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탁옹(籜翁) - 정약용(丁若鏞)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유형원(柳馨遠)ㆍ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實學)을 집대성함.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함.
1762~1836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강진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태수(苔叟) - 정약용(丁若鏞)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유형원(柳馨遠)ㆍ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實學)을 집대성함.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함.
1762~1836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강진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택구거사(澤癯居士) - 이식(李植)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인조반정 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등을 지냄.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ㆍ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불림.
1584~1647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택당(澤堂) - 이식(李植)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인조반정 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등을 지냄.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ㆍ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불림.
1584~1647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택풍(澤風) - 이식(李植)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인조반정 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등을 지냄.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ㆍ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불림.
1584~1647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택풍당(澤風堂) - 이식(李植)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인조반정 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등을 지냄.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ㆍ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불림.
1584~1647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택풍자(澤風子) - 이식(李植)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인조반정 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등을 지냄.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ㆍ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불림.
1584~1647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파문(坡門) - 성혼(成渾)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백인걸(白仁傑)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을 사숙하고 이이(李珥)와 도의지교를 맺음. 서인(西人) 집권 후 이조 참판 등을 지내고, 이이와 6년에 걸쳐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에 대해 논변함.
1535~159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파산(坡山) - 성혼(成渾)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백인걸(白仁傑)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을 사숙하고 이이(李珥)와 도의지교를 맺음. 서인(西人) 집권 후 이조 참판 등을 지내고, 이이와 6년에 걸쳐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에 대해 논변함.
1535~159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파옹(坡翁) - 성혼(成渾)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백인걸(白仁傑)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을 사숙하고 이이(李珥)와 도의지교를 맺음. 서인(西人) 집권 후 이조 참판 등을 지내고, 이이와 6년에 걸쳐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에 대해 논변함.
1535~159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한산병은(漢山病隱) - 안정복(安鼎福)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이익(李瀷)의 문인으로, 실학(實學)을 연구하여 역사지리학(歷史地理學)을 세밀히 고증한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저술함.
1712~1791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제천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한천(寒泉) - 이재(李縡)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우봉(牛峯).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으로, 노론(老論)의 중심인물로 활약함. 정미환국(丁未換局) 이후 용인(龍仁)의 한천(寒泉)에 거주하며 학자를 양성하고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을 저술함.
1680~1746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용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포저(浦渚) - 조익(趙翼)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 좌의정(左議政)을 역임함.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로 예학에 밝았으며 음률(音律)ㆍ병법(兵法)ㆍ복서(卜筮)에도 능했음.
1579~165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찬겸(贊謙) - 최익현(崔益鉉)
조선 철종(哲宗)~근대의 문신ㆍ학자.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실정을 비판하여 실각시켰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투쟁(抗日鬪爭)을 펼치며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대마도(對馬島)에서 순절함.
1833~1906 한국>근대ㅣ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포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협(昌協) - 김창협(金昌協)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집(金昌集)의 동생.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은거함.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이기론(理氣論)을 절충한 학설을 주장하고, 《농암집(農巖集)》을 남김.
1651~170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경기도>과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흡(昌翕) - 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