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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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崔益鉉)
조선 철종(哲宗)~근대의 문신ㆍ학자.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실정을 비판하여 실각시켰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투쟁(抗日鬪爭)을 펼치며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대마도(對馬島)에서 순절함.
1833~1906 한국>근대ㅣ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포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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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李植)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인조반정 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등을 지냄.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ㆍ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불림.
1584~1647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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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李瀷)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실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중농사상(中農思想)에 기반을 두고, 한전론(限田論)ㆍ사농합일론(士農合一論) 등의 사회 개혁론을 주장함. 천문ㆍ지리ㆍ율산(律算)ㆍ의학 등에 능통하고, 저서로 《성호사설(星湖僿說)》ㆍ《곽우록(藿憂錄)》등이 있음.
1681~1763 한국>조선후기 , 평안도>운산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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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긍익(李肯翊)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로, 이광사(李匡師)의 아들. 가학(家學)을 따라 양명학(陽明學)을 익혔으며, 저서로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이 있음.
1736~1806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고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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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하(李端夏)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아들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름.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가운데 경학(經學)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저서에 《선묘보감(宣廟寶鑑)》ㆍ《외재집(畏齋集)》 등이 있음.
1625~1689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지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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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李縡)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우봉(牛峯).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으로, 노론(老論)의 중심인물로 활약함. 정미환국(丁未換局) 이후 용인(龍仁)의 한천(寒泉)에 거주하며 학자를 양성하고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을 저술함.
1680~1746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용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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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강(許橿)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양천(陽川).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허자(許磁)의 아들로, 정작(鄭碏)ㆍ이지함(李之菡)ㆍ양사언(楊士彦) 등과 교계(交契)가 깊었음.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조부.
1520~159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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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유성룡(柳成龍)ㆍ이달(李達)의 문인. 이이첨(李爾瞻)과 결탁하여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였으며, 반란을 계획하다 탄로되어 참수형을 당함.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인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씀.
1569~161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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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許穆)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양천(陽川).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예송(禮訟) 논쟁에서 남인(南人)을 주도하며 송시열(宋時烈)의 서인(西人)과 대립함. 사상적으로 이황(李滉)ㆍ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李瀷)에게 연결함.
1595~168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연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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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가신(洪可臣)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민순(閔純)의 문인으로,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淸亂功臣)에 책록됨.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입각하여 노장(老莊)ㆍ불교(佛敎)를 비판함.
1541~161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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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정(洪宇定)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한성 서윤(漢城庶尹) 홍영(洪榮)의 아들로, 병자호란 때 태백산(太白山) 춘양(春陽)에 은거하여 홍석(洪錫)ㆍ정양(鄭瀁)ㆍ강흡(姜恰)ㆍ심장세(沈長世) 등과 함께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불림.
1593~1654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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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성(洪至誠)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여경(餘慶) 홍유손(洪裕孫)의 아들. 사화로 고초를 겪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여 학문에 매진하고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특히 고문에 정통했음.
1528~1597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