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1건)
유의어(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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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箕報) - 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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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경(金文卿)@김기보 - 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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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로(筠老) - 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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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암(潭庵) - 김용석(金用石)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학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김굉필(金宏弼)ㆍ정여창(鄭汝昌) 등과 동문수학하였음.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태백산(太白山)으로 들어갔음.
1453~152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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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大老)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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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文卿) - 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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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文正)@김상헌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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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헌(尙憲)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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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노인(西磵老人)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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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石室)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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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산인(石室山人)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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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도(叔度)@김상헌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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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숙(鍊叔) - 김용석(金用石)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학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김굉필(金宏弼)ㆍ정여창(鄭汝昌) 등과 동문수학하였음.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태백산(太白山)으로 들어갔음.
1453~152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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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用石) - 김용석(金用石)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학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김굉필(金宏弼)ㆍ정여창(鄭汝昌) 등과 동문수학하였음.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태백산(太白山)으로 들어갔음.
1453~152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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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淸老)@김상헌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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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淸爺)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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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淸陰)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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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균(蒼筠) - 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