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40건)
유의어(3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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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선(兼善) - 홍귀달(洪貴達)
조선 세조(世祖)~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성격이 강직하여 연산군 생모인 윤비(尹妃)의 폐출을 반대하다 투옥되었고,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하여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교살(絞殺)됨.
1438~150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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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요(大曜) - 홍언승(洪彦昇)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의 맏아들로, 1495년(연산군 1)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였으며, 현감(縣監)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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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미(君美)@홍언방 - 홍언방(洪彦邦)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의 둘째 아들로, 1502년(연산군 8) 별시(別試)에 급제하였으며, 언양 현감(彦陽縣監)ㆍ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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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달(貴達) - 홍귀달(洪貴達)
조선 세조(世祖)~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성격이 강직하여 연산군 생모인 윤비(尹妃)의 폐출을 반대하다 투옥되었고,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하여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교살(絞殺)됨.
1438~150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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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木齋) - 홍여하(洪汝河)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로, 홍호(洪鎬)의 아들.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남인(南人) 집권 후에 사간(司諫) 등을 지냄.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음.
1621~167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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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百源)@홍여하 - 홍여하(洪汝河)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로, 홍호(洪鎬)의 아들.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남인(南人) 집권 후에 사간(司諫) 등을 지냄.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음.
1621~167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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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鳳巖) - 홍상민(洪相民)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여하(洪汝河)의 아들로, 세자익위사 익위(世子翊衛司翊衛) 등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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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선생(無憂先生) - 홍귀달(洪貴達)
조선 세조(世祖)~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성격이 강직하여 연산군 생모인 윤비(尹妃)의 폐출을 반대하다 투옥되었고,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하여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교살(絞殺)됨.
1438~150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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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文匡)@홍귀달 - 홍귀달(洪貴達)
조선 세조(世祖)~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성격이 강직하여 연산군 생모인 윤비(尹妃)의 폐출을 반대하다 투옥되었고,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하여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교살(絞殺)됨.
1438~150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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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택재(山澤齋) - 홍여하(洪汝河)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로, 홍호(洪鎬)의 아들.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남인(南人) 집권 후에 사간(司諫) 등을 지냄.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음.
1621~167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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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相民) - 홍상민(洪相民)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여하(洪汝河)의 아들로, 세자익위사 익위(世子翊衛司翊衛) 등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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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汝河) - 홍여하(洪汝河)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로, 홍호(洪鎬)의 아들.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남인(南人) 집권 후에 사간(司諫) 등을 지냄.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음.
1621~167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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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방(彦邦) - 홍언방(洪彦邦)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의 둘째 아들로, 1502년(연산군 8) 별시(別試)에 급제하였으며, 언양 현감(彦陽縣監)ㆍ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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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승(彦昇)@홍언승 - 홍언승(洪彦昇)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의 맏아들로, 1495년(연산군 1)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였으며, 현감(縣監)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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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충(彦忠) - 홍언충(洪彦忠)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지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간언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남.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473~150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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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寓庵)@홍언충 - 홍언충(洪彦忠)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지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간언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남.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473~150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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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寓菴) - 홍언충(洪彦忠)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지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간언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남.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473~150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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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거사(寓菴居士) - 홍언충(洪彦忠)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지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간언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남.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473~150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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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도(應圖) - 홍여하(洪汝河)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로, 홍호(洪鎬)의 아들.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남인(南人) 집권 후에 사간(司諫) 등을 지냄.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음.
1621~167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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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佐)@홍좌 - 홍좌(洪佐)
고려시대의 문신. 시중(侍中) 홍난(洪鸞)의 후손으로 부계홍씨(缶溪洪氏)의 시조이며, 직장동정(直長同正)을 지냄.
한국>고려시대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