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579건)
표제어(30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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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광(張顯光)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1576년(선조 9)에 재능과 행실이 드러나 조정에 천거된 이후로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대부분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 몰두하여 경학(經學)에 일가를 이룸.
1554~163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인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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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세(鄭經世)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냄. 주자학에 본원을 두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음.
1563~163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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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곤수(鄭崐壽)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수령을 지내면서 학문 진흥과 사풍(士風) 진작에 힘씀. 임진왜란 때 대명외교에서 큰 역할을 함.
1538~160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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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鄭逑)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임해군 옥사(臨海君獄事) 때 관련 인물의 석방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린 뒤 고향으로 돌아감. 경서(經書)ㆍ의학ㆍ천문ㆍ지리 등에 통달하고 특히 예학(禮學)에 뛰어남.
1543~162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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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민(鄭大民)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효자. 본관은 하동(河東). 정언남(鄭彦男)의 아들이자, 정홍서(鄭弘緖)의 아버지로, 장수 현감(長水縣監) 등을 지냄. 정유재란 때 부모가 모두 살해되자 시묘(侍墓)하다가 왜적에게 죽음.
1551~159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하동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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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성(鄭士誠)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ㆍ내자시 주부(內資寺主簿)ㆍ양구 현감(楊口縣監) 등을 지낸 뒤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힘씀.
1545~160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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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신(鄭思愼)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정인수(鄭麟壽)의 아들이며, 정홍익(鄭弘翼)의 아버지로, 사섬시 정(司贍寺正) 등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동래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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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鄭瀁)
조선 광해군(光海君)~현종(顯宗)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연일(延日)로, 정종명(鄭宗溟)의 아들. 간성 군수(杆城郡守) 등을 지내고, 홍석(洪錫) 등과 교유하며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불림. 저서로 《어록해(語錄解)》ㆍ《포옹집(抱翁集)》 등이 있음.
1600~166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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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엽(鄭曄)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성혼(成渾)ㆍ이이(李珥)의 문인. 황주 판관(黃州判官)으로서 왜군을 격퇴한 공으로 중화 부사(中和府使)가 됨. 대사성(大司成)으로서 타직(他職)을 겸하는 예가 정엽으로부터 비롯됨.
1563~162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초계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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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鄭蘊)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다가 유배됨. 병자호란 때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사직한 후 덕유산(德裕山)에 들어가 은거함.
1569~164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거창ㅣ경상도>안음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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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鄭仁弘)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서산(瑞山). 조식(曺植)의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움. 광해군 때 영의정으로서 대북(大北)을 영도하여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야기시켰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참형됨.
1536~162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합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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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명(鄭宗溟)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문인ㆍ문신인 정철(鄭澈)의 아들로, 선조 재위 시 아버지의 죄를 추론받아 삭출되었다가 인조 즉위 후 관직이 복구되어 강릉 부사(江陵府使)를 지냄.
1565~162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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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연(鄭昌衍)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정유길(鄭惟吉)의 아들로, 좌의정(左議政) 등을 지냄. 1614년(광해군 6)에 영창대군(永昌大君)에 대한 상소로 위험에 처한 정온(鄭蘊)을 변호하고, 폐모(廢母) 논의가 일자 두문불출하다가 인조반정 이후 복직함.
1552~163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동래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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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화(鄭致和)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로, 효종(孝宗)의 부마인 정재륜(鄭載崙)의 아버지.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으로 심양(瀋陽)에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보필함. 좌의정(左議政)을 지내고, 서인과 남인의 대결에서 중도를 지킴.
1609~167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동래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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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鄭琢)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정이충(鄭以忠)의 아들이며 이황(李滉)의 문인.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왕을 호종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책록되고, 경사(經史)ㆍ천문(天文)ㆍ지리(地理) 등에 정통했음.
1526~160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천ㅣ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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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인(鄭好仁)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로,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낸 정안번(鄭安藩)의 아들. 병자호란 때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돕고, 진주 목사(晉州牧使) 등을 지냄.
159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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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서(鄭弘緖)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 장수 현감(長水縣監)을 지낸 정대민(鄭大民)의 아들로, 1628년(인조 6)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학정(學正) 등을 지냄. 남계서원(蘫溪書院) 별사(別祠)에 배향됨.
1571~164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하동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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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익(鄭弘翼)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사섬시 정(司贍寺正)을 지낸 정사신(鄭思愼)의 아들.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하다 유배되었으며,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풀려나 부제학(副提學)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기 전에 죽음.
1571~162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동래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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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적(鄭熙績)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이식(李拭)과 함께 서인(西人)의 등용을 막으려다가 반발을 불러일으킴. 임진왜란 때 길주 부사(吉州府使)로서 왜군을 맞아 싸웠으나 안동 부사(安東府使) 재임시 왜적을 막지 않고 도망한 문제로 비변사의 탄핵을 받음.
154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하동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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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趙絅)
조선 광해군(光海君)~현종(顯宗)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조익남(趙翼男)의 아들이며 윤근수(尹根壽)의 문인(門人).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고, 대제학(大提學)ㆍ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냄.
1586~1669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거창ㅣ경기도>포천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