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043건)
표제어(1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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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李楨)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어려서는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로부터 배우고 성장한 뒤에는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함. 홍문관 부제학에 제수되었으나 사천(泗川)에 구암정사(龜巖精舍)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씀.
1512~1571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사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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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형(李廷馨)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이탕(李宕)의 아들이며, 정윤희(丁胤禧)의 문인. 성리학(性理學) 등 다방면에 밝고, 이원익(李元翼)ㆍ이호민(李好民)ㆍ이수광(李睟光) 등과 교유하였으며, 이조 참판 등을 지냄.
1549~160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경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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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회(李庭檜)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공을 세운 뒤에 귀향하여 지남서당(芝南書堂)을 짓고 후진교육에 힘씀.
1542~161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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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李晁)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내다가 귀향한 후 더 이상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함. 저서로 《동곡실기(桐谷實記)》 등이 있으며,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에 배향됨.
1530~1580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단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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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준(李宗準)
조선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ㆍ학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시서화(詩書畵)에 능하고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지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무고를 받아 국문을 받던 중에 죽음.
?~149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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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李埈)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흥양(興陽).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남인(南人) 세력을 결집하고 여론을 주도함. 임진왜란(壬辰倭亂)ㆍ정유재란(丁酉再亂)ㆍ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조달함.
1560~163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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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번(李之蕃)@조선전기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표연말(表沿沫)ㆍ유호인(兪好仁)ㆍ최한후(崔漢侯) 등과 교유하였으며,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에 벼슬살이의 염증을 느끼고 낙향하여 학문에 몰두함.
1469~152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성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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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李澄)@이황의형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형으로, 제원도 찰방(濟原道察訪)을 지냄.
1498~158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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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滉)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주리론적(主理論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한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장(宗匠).
1501~1570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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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洪錫)@조선후기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태백산(太白山) 춘양(春陽)에 은거하여 강흡(姜洽) 등과 함께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불림. 후에 세자익위사 사어(世子翊衛司司禦)를 지냄.
1604~168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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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량(黃俊良)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평해(平海).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호조 좌랑(戶曹佐郞)ㆍ신녕 현감(新寧縣監) 등을 지내고, 교육진흥에 힘을 기울여 문묘(文廟)를 수축하고 백학서원(白鶴書院)을 창설하는 등의 많은 치적을 남김.
1517~156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풍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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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공(黃孝恭)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원(昌原).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을 지냈으나, 탄핵을 받고 영천(榮川)으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함. 특히 도상학(圖象學)과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어 이황(李滉)과 《주역》에 대해 토론하며 시문(詩文)을 주고받음.
1496~155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