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690건)
표제어(24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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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돈(孫叔暾)
조선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 때의 학자. 이언적(李彦迪)의 외숙으로, 조한보(曺漢輔)와 무극(無極)ㆍ태극(太極)에 관한 논변서(論辨書)를 주고받음.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경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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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제(孫英濟)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많은 사재를 희사하여 도산서원(陶山書院) 건립에 크게 이바지함. 저서로 《추천집(鄒川集)》이 있음.
152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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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처눌(孫處訥)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 본관은 일직(一直).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학문과 효행이 뛰어남. 왜란(倭亂)과 호란(胡亂) 때 창의하고, 난리 후에 향교 재건에 앞장섬. 대구(大邱) 청호서원(靑湖書院)에 배향됨.
1553~163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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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천우(孫天祐)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각재(覺齋) 하항(河沆) 등과 함께 덕천서원(德川書院)을 건립함.
1533~159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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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충(宋碩忠)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야로(冶爐). 현령(縣令) 송륜(宋綸)의 아들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김굉필(金宏弼)ㆍ최부(崔溥) 등 교유하던 인물들이 화(禍)를 당하자 향리(鄕里)에 내려가 서사(書史)에 몰두함.
1454~152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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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관(安灌)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갑자사화(甲子士禍)ㆍ을묘사화(乙卯士禍)를 목격한 뒤 여항산(艅航山)에 은거하여 산수를 읊으며 세간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음.
1491~155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함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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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증(安嶒)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성리학의 이론을 깊이 터득하고 후일에는 실학사상에 심취함. 세자시강원 사서(世子侍講院司書) 등을 지냈으나, 을사사화(乙巳士禍) 이후 낙향하여 평생 학문에 전념함.
1494~153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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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安珦)
고려 원종(元宗)~충렬왕(忠烈王) 때의 문신ㆍ학자. 원(元) 나라에서 주자서(朱子書)를 베껴오고 섬학전(贍學錢)을 설치하는 등 성리학(性理學)의 도입과 보급에 힘씀.
1243~1306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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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순(偰循)
조선 세종(世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설경수(偰慶壽)의 아들로, 1431년(세종 13)에 왕명으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편수했으며, 저서에 윤회(尹淮)와 함께 저술한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가 있음.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등을 지냄.
?~1435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경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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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薛聰)
통일신라 신문왕(神文王)~경덕왕(景德王) 때의 학자.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아들. 신라십현(新羅十賢)의 한 사람이며, 강수(强首)ㆍ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삼문장(新羅三文章)의 한 사람으로 꼽힘. 이두(吏讀)를 집대성했으며, 〈화왕계(花王戒)〉를 지음.
655~? 한국>통일신라 , 경상도>경주 , 인명>관인>문신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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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간(成侃)
조선 단종(端宗)~세조(世祖) 때의 문신ㆍ학자. 유방선(柳方善)의 문인(門人). 집현전 박사(集賢殿博士)로 문명(文名)을 떨쳤으나 요절함. 특히 시부(詩賦)에 뛰어나 〈궁사(宮詞)〉ㆍ〈신설부(新雪賦)〉 등의 작품을 남김.
1427~145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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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년(成聃年)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성담수(成聃壽)의 동생. 교리(校理) 등을 지냈으며,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음.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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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람(成灠)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감사(監司)를 지낸 성세평(成世平)의 아들로,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인. 성리학(性理學)과 의학에 밝았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후에는 조익(趙翊)ㆍ정경세(鄭經世)ㆍ이준(李埈) 등과 교유함.
1556~162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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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준(成文濬)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둘째 아들로, 성혼이 무욕(誣辱)을 당하자 임천(林泉)에 은거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냄. 박학다식하며 글씨에 능함.
1559~162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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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종(成守琮)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 성세순(成世純)의 아들로, 1519년(중종 14)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趙光祖)의 문인(門人)이라 하여 과방(科榜)에서 삭제된 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청빈하게 살음.
1495~153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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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침(成守琛)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아버지이며, 조광조(趙光祖)의 문인(門人)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벼슬을 단념하고 경서 공부에 전념함. 그 문하에서 많은 석학들이 배출됨.
1493~156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ㅣ경기도>파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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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신(成汝信)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조식(曺植)의 문인(門人)으로, 일찍부터 문명(文名)을 떨쳤으며, 저서에 《부사집(浮査集)》이 있음.
1546~163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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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해(成允諧)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성근(成近)의 아들로, 학행(學行)으로 여러 번 추천되어 왕자사부(王子師傅)ㆍ태인 현감(泰仁縣監)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상주(尙州)에 은거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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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임(成任)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성염조(成念祖)의 아들로,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됨. 《국조보감(國朝寶鑑)》ㆍ《경국대전(經國大典)》편찬에 참여하고, 글씨와 시문에 뛰어남.
1421~148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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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원(成悌元)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보은 현감(報恩縣監) 등을 지냈으며, 박응순(朴應順) 등 많은 인재를 육성함.
1506~155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