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425건)
표제어(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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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언경(南彦經)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반박하고 양명학(陽明學) 체계를 완성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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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신(盧守愼)
조선 인종(仁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주(光州). 문장과 서예에 능하고,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했으며, 불교의 영향을 받기도 함. 대윤(大尹)의 한 사람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유배됨.
1515~159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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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응황(姜應璜)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주(晉州)로,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ㆍ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일로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병조 좌랑(兵曹佐郞)ㆍ예산 현감(禮山縣監)ㆍ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냄.
1571~164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함양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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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姜漢)
조선 성종(成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진주(晉州). 학행과 뛰어나고 필법(筆法)이 정묘했으며,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교유함. 문하(門下)에서 정옥견(鄭玉堅)ㆍ권오복(權五福)ㆍ정사룡(鄭士龍) 등이 배출되었음.
145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산음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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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金絿)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글씨에 뛰어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ㆍ양사언(楊士彦)ㆍ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힘.
1488~1534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예산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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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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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성(金孟性)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임사홍(任士洪)과 함께 현석규(玄錫圭)를 탄핵한 죄로 고령(高靈)에 유배된 후 향리로 돌아가 후진을 양성함.
1437~148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성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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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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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수(閔遇洙)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여흥(麗興)으로, 충문공(忠文公) 민진후(閔鎭厚)의 아들. 김창협(金昌協)ㆍ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학업에 전념함.
1694~175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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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朴善長)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남몽오(南夢鰲)의 문인으로, 예안 현감(禮安縣監)ㆍ경상 도사(慶尙都事) 등을 지냄.
1555~161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천(榮川)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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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朴世堂)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이조 참판 박정(朴炡)의 아들. 실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하였으며,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하여 주자학(朱子學)을 비판함.
1629~1703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전라도>남원ㅣ경기도>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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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채(朴世采)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성리학자. 김상헌(金尙憲)ㆍ김집(金集)에게 수학하고,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묘배향을 주장함. 예송논쟁(禮訟論爭) 때 기년설(朞年說)을 지지하고 많은 저서를 남김.
1631~169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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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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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金壽增)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김상헌(金尙憲)의 손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으로 들어가 은둔함.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음.
1624~1701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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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金壽興)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을 지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장기(長鬐)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 저서에 《퇴우당집(退憂堂集)》 5책이 있음.
1626~169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장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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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金湜)@조선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현량과(賢良科)에 장원 급제하고, 기묘팔현(己卯八賢)의 한 사람으로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개혁정치를 펼쳤으나, 기묘사화와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다가 자결함. 선조(宣祖) 때 영의정에 추증됨.
1482~152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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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행(金亮行)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민우수(閔愚洙)의 문인으로, 형조 참판(刑曹參判) 등을 지냄.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고, 이우신(李友信)ㆍ민치복(閔致福)ㆍ박준원(朴準源) 등을 배출함.
1715~177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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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행(金元行)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종조(從祖) 김창집(金昌集)이 사사되고 일가가 모두 유배된 후 벼슬을 사양하고 성리학에 전념함.
1702~177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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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金長生)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이이(李珥)의 문인(門人)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서인(西人)의 영수 역할을 하였고,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함.
1548~163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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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金集)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예학(禮學)을 대성시킴. 대사헌(大司憲)ㆍ좌찬성(左贊成) 등을 지내고, 효종과 북벌(北伐)을 계획함.
1574~1656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연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