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538건)
표제어(675건)
-
김현성(金玄成)
조선 명종(明宗)~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서화가. 본관은 김해(金海).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두루 능하였으며, 숭인전비문(崇仁殿碑文) 등 서예 유작이 전해짐.
1542~162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
김효원(金孝元)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으로, 조식(曺植)ㆍ이황(李滉)의 문인. 이조 전랑(吏曹銓郞)의 추천과 임명을 둘러싸고 심의겸(沈義謙)과 반목하면서 사림계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는 원인을 제공함.
1542~159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김효원(金效元)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장원서 장원(掌苑署掌苑)을 지낸 김만억(金萬億)의 아들. 1546년(명종 1)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여 정자(正字)를 지내고,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과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김흠(金欽)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전력부위(展力副尉) 김승석(金承碩)의 아들. 청주 목사(淸州牧使)를 지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맞아 항전도중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됨.
1537~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
김흥근(金興根)
조선 순조(純祖)~고종(高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이조 참판(吏曹參判) 김명순(金明淳)의 아들. 《헌종실록(憲宗實錄)》ㆍ《철종실록(哲宗實錄)》편찬에 참여하고, 영의정(領議政)을 지냄.
1796~187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김희년(金禧年)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자용(金自鎔)의 아들이고, 조식(曺植)의 문인(門人).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복권되어 통례(通禮)를 지냄.
1534~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김희수(金喜壽)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성중(李誠中)에게 수학하고, 대전별감(大殿別監)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공철(南公轍)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동참하여 순정한 육경고문(六經古文)을 깊이 연찬하고,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많은 금석문(金石文)ㆍ비갈(碑碣)을 남긴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알려짐.
1760~184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
남궁제(南宮悌)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남궁숙(南宮淑)의 아들이며 성혼(成渾)의 사돈으로, 연안 부사(延安府使) 등을 지냄. 성혼이 그에게 보낸 편지가 《우계집(牛溪集)》에 실려 있음.
154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변(南忭)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형조 정랑(刑曹正郞)을 지낸 남이(南儞)의 아들.
1454~149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복흥(南復興)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수의부위(修義副尉) 남맹하(南孟夏)의 아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무공(武功)을 세우고, 명(明) 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접반사(接伴使)를 지냄.
155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상문(南尙文)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명(明) 나라의 경리(經理) 양호(楊鎬)가 뛰어난 학식에 감동되어 그의 문하가 되었고, 고고한 품행으로 금오랑(金吾郞)에 등용됨.
1520~160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순민(南舜民)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충청도 수군절도사 남효원(南孝元)의 아들. 독서를 즐겨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역학(易學)에 정통했음.
1484~156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언경(南彦經)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반박하고 양명학(陽明學) 체계를 완성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남언기(南彦紀)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김인후(金麟厚)ㆍ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선조(宣祖) 초 영의정 이탁(李鐸)의 천거로 동몽교관(童蒙敎官)ㆍ빙고별좌(氷庫別坐)에 임명됨.
1534~?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동복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용익(南龍翼)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내고,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문명을 떨쳤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에 연루되어 명천(明川)에 유배되어 죽음.
1628~16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
남유용(南有容)
조선 경종(景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남용익(南龍翼)의 증손.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과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음.
1698~177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응운(南應雲)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참판 남세건(南世健)의 아들로,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내직과 외직을 두루 지내고, 전서(篆書)와 주서(籒書) 등 글씨에도 뛰어나 여러 작품을 남김.
1509~158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무신ㅣ인명>관인>문신
-
남이신(南以信)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참판 남호(南琥)의 아들이자, 이조 판서 남이공(南以恭)의 형으로, 경기 감사(京畿監司) 시절에 주문사(奏聞使)로 명(明) 나라에 다녀왔으며,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냄.
1562~160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남한기(南漢紀)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남정중(南正重)의 아들이며, 남유용(南有容)의 아버지로, 내직과 외직을 두루 역임한 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고, 추은(推恩)으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감.
1675~174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