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538건)
표제어(67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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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기(趙元紀)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정랑(正郞) 조충손(趙衷孫)의 아들이며 조광조(趙光祖)의 숙부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냄.
1457~153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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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한(趙緯韓)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조양정(趙揚庭)의 아들이자 선산 부사(善山府使)를 지낸 조찬한(趙纘韓)의 형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냄.
1567~164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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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육(趙育)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지낸 조충손(趙衷孫)의 아버지로, 의영고 사(義盈庫使)를 지내고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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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세(趙應世)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횡성(橫城). 평양부 서윤(平壤府庶尹)을 지낸 조준(趙俊)의 아들로, 1534년(중종 29)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여 참봉(參奉)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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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남(趙翼男)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인조(仁祖) 때 대제학(大提學)ㆍ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낸 조경(趙絅)의 아버지로, 사섬시 참봉(司贍寺參奉)을 지냄.
한국>조선시대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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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규(趙仁奎)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조세보(趙世輔)의 아들로, 형조 참의(刑曹參議)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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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옥(趙仁沃)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문신.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돈(趙暾)의 아들로, 전법판서(典法判書) 등을 지내고,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록됨.
1347~1396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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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기(趙廷機)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사섬시 정(司贍寺正)을 지낸 조종경(趙宗敬)의 아들이자 평택 현감(平澤縣監) 조수륜(趙守倫)의 아버지. 학문이 뛰어나 오랫동안 선조의 시강(侍講)을 맡았으며, 장령(掌令)을 지냄.
1535~1575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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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존성(趙存性)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조창원(趙昌遠)의 아버지로, 성혼(成渾)ㆍ박지화(朴枝華)의 문하에서 수학함. 강화 부사(江華府使) 등 외직 재임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호조 판서(戶曹判書) 등을 지냄.
1554~162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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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경(趙宗敬)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조팽(趙彭)의 아들로, 전한(典翰)ㆍ사섬시 정(司贍寺正) 등을 지냄. 김안로의 탄핵으로 파직되자 과천(果川)으로 내려가 학문 연구에 전념함.
1495~1535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과천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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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영(趙鍾永)
조선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문신. 문과에 급제하여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고, 우참찬(右參贊)에 이름.
1771~182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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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휘(趙仲輝)
조선 세조(世祖)~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관찰사 조근(趙瑾)의 아들. 영릉 참봉(英陵參奉)을 지냈으며, 학문이 숙성하고 백가(百家)에 밝음.
1445~1505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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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趙之壽)
고려 후기의 문신.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시조. 명종(明宗)~강종(康宗)까지 네 명의 왕을 섬기고,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 등을 지냄.
한국>고려후기 , 함경도>덕원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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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주(趙之周)
조선 문종(文宗)~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으로, 판중추부사 조혜(趙惠)의 아들. 문음(門蔭)으로 인수부 승(仁壽府丞)에 서용되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등을 지냄.
1448~149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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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징(趙澄)
조선 중중(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1566년(명종 21) 중시(重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내고, 1574년(선조 7) 사신으로 명(明) 나라에 다녀오던 중 해주(海州)에서 병사함.
1511~157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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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한(趙纘韓)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으로, 조양정(趙揚庭)의 아들. 영천 군수(榮川郡守) 시절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로 도둑을 토벌하고, 형조 참의(刑曹參議)ㆍ선산 부사(善山府使) 등을 지냄. 시부(詩賦)에 능함.
1572~163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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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趙昌遠)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지낸 조존성(趙存性)의 아들로, 형조 좌랑(刑曹佐郞) 등을 지내고, 딸이 인조의 계비(繼妃)로 간택됨.
1583~164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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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손(趙衷孫)
조선 세종(世宗)~단종(端宗)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조육(趙育)의 아들로, 병조 정랑(兵曹正郞) 등을 지냈으나,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역모에 연루되어 고신(告身)이 추탈되고 유배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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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구(趙泰耉)
조선 숙종(肅宗)~경종(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로, 우의정 조사석(趙師錫)의 아들. 소론의 영수로 1721년(경종 1)에 신임사화(辛壬士禍)를 일으켜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을 역모죄로 몰아 사사(死賜)하게 한 뒤 영의정에 오름.
1660~172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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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영(曺漢英)
조선 인조(仁祖)~현종(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이식(李植)ㆍ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가하고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등을 지냄.
1608~167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