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15건)
표제어(7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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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식(羅湜)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정(安定).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흥양(興陽)으로 유배되었다가 강계(江界)에서 사사(賜死)됨.
1498~154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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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언경(南彦經)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반박하고 양명학(陽明學) 체계를 완성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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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명(南鶴鳴)
조선 숙종(肅宗) 때의 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아들. 음보(蔭補)로 주부(主簿)에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수락산(水洛山)에 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함.
1654~172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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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신(盧守愼)
조선 인종(仁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주(光州). 문장과 서예에 능하고,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했으며, 불교의 영향을 받기도 함. 대윤(大尹)의 한 사람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유배됨.
1515~159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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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응황(姜應璜)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주(晉州)로,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ㆍ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일로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병조 좌랑(兵曹佐郞)ㆍ예산 현감(禮山縣監)ㆍ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냄.
1571~164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함양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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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姜漢)
조선 성종(成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진주(晉州). 학행과 뛰어나고 필법(筆法)이 정묘했으며,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교유함. 문하(門下)에서 정옥견(鄭玉堅)ㆍ권오복(權五福)ㆍ정사룡(鄭士龍) 등이 배출되었음.
145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산음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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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하(權尙夏)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ㆍ문신. 송시열(宋時烈)의 문인(門人)으로, 이이(李珥)를 조종(祖宗)으로 하여 송시열에게 계승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끎.
1641~172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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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원(金光遠)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영광(靈光)으로, 조광조(趙光祖)의 문인.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가 사사(賜死)되자, 장흥(長興)에 돌아와 학문에만 전념함.
1478~1550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장흥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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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金絿)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글씨에 뛰어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ㆍ양사언(楊士彦)ㆍ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힘.
1488~1534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예산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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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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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성(金孟性)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임사홍(任士洪)과 함께 현석규(玄錫圭)를 탄핵한 죄로 고령(高靈)에 유배된 후 향리로 돌아가 후진을 양성함.
1437~148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성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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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상(金鳳祥)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 본관은 청도(淸道). 김현(金俔)의 아들로, 영릉 참봉(英陵參奉) 등을 지냈으며,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보련산(寶蓮山)에 은거함.
1496~1545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충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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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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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수(閔遇洙)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여흥(麗興)으로, 충문공(忠文公) 민진후(閔鎭厚)의 아들. 김창협(金昌協)ㆍ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학업에 전념함.
1694~175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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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朴善長)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남몽오(南夢鰲)의 문인으로, 예안 현감(禮安縣監)ㆍ경상 도사(慶尙都事) 등을 지냄.
1555~161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천(榮川)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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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朴世堂)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이조 참판 박정(朴炡)의 아들. 실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하였으며,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하여 주자학(朱子學)을 비판함.
1629~1703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전라도>남원ㅣ경기도>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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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채(朴世采)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성리학자. 김상헌(金尙憲)ㆍ김집(金集)에게 수학하고,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묘배향을 주장함. 예송논쟁(禮訟論爭) 때 기년설(朞年說)을 지지하고 많은 저서를 남김.
1631~169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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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朴英)@조선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무신ㆍ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무과(武科)에 급제했으나 학문에 전념함. 성리학(性理學)뿐만 아니라 역학(易學)ㆍ천문(天文)ㆍ의술(醫術)에도 조예가 깊었음.
1471~1540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선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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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朴齊家)
조선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실학자. 시문 사대가(詩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박지원(朴趾源)ㆍ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 등과 함께 북학파(北學派)를 이룸. 저서에 《북학의(北學議)》ㆍ《정유고략(貞蕤稿略)》 등이 있음. 춘당대 무과(春塘臺武科)에 장원하여 오위장(五衛將)ㆍ영평 현감(永平懸監) 등을 지냄.
1750~1805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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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