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674건)
표제어(8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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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균(趙鈞)@조선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양주(楊州). 1522년(중종 17)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고,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과 시문(詩文)으로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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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극공(趙克恭)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광주(廣州)로, 계공랑(啓功郞) 조이종(趙李宗)의 아들. 조욱(趙昱)이 서울로 올라가는 조극공에게 영월(寧越)에서 시를 지어줌.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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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대군(鎭安大君)
조선 제1대 태조(太祖)의 첫째 아들.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의 소생으로, 고려 창왕(昌王)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로서 강회백(姜淮伯)과 함께 명 나라에 파견되어 창왕의 친조(親朝)를 청하였으며, 조선 개국 후 진안군(鎭安君)에 봉해짐.
1354~1393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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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군(昌原君)
조선 제7대 세조(世祖)의 두 번째 서자. 근빈(謹嬪) 박씨(朴氏)의 소생으로, 성격이 방탕(放蕩)하고 난폭하여 여러 차례 국문(鞫問)을 당함.
1457~148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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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彰義門)
조선 태조(太祖) 때 건립한 사소문(四小門)의 하나. 돈의문(敦義門)과 숙정문(肅靖門) 사이에 있던 서북간문(西北間門). 북한(北漢)ㆍ양주(楊州)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며,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능양군(陵陽君)을 비롯한 의군(義軍)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함.
139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유적>시설>성,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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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세걸(蔡世傑)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돈녕부 첨정(敦寧府僉正)을 지낸 채자연(蔡子涓)의 아들로, 대사헌(大司憲)ㆍ강원 감사(江原監司)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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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세영(蔡世英)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첨정(僉正) 채자연(蔡子涓)의 아들로, 《중종실록(中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좌참찬(左參贊) 등을 지냈으며, 천문(天文)ㆍ의약(醫藥)ㆍ중국어(中國語)에 정통함.
1490~156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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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권(蔡紹權)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인천군(仁川君) 채수(蔡壽)의 아들로, 대사헌(大司憲)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ㆍ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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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蔡壽)
조선 세조(世祖)~중종(中宗) 때의 문신.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어 인천군(仁川君)에 봉해지고, 패관소설인 《설공찬전(薛公贊傳)》을 지음.
1449~1515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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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선(蔡承先)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평강(平康). 대사헌(大司憲) 채침(蔡忱)의 아들. 이른 나이에 시험에서 여러 번 수석을 했지만 과거를 포기하고 시주(詩酒)로 여생을 즐김.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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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응상(蔡應祥)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인천(仁川). 채인손(蔡仁孫)의 아들로, 1540년(중종 35)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며, 김준(金濬)ㆍ박승임(朴承任) 등과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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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침(蔡忱)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정평 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를 지낸 채석경(蔡碩卿)의 아들로, 곤양 군수(昆陽郡守)ㆍ대사헌(大司憲)을 지냄. 중종의 원비(元妃)인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복위를 반대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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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파(淸談派)
조선 전기 유학계(儒學界)의 한 파. 중국 진(晉) 나라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모방하여 남효온(南孝溫)ㆍ홍유손(洪裕孫) 등 7명이 모여 시주(詩酒)와 가무(歌舞)로 소일함.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음.
148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집단>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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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창(崔慶昌)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李珥)ㆍ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리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도 불림. 종성 부사(鍾城府使) 등을 지냄.
1539~158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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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홍(崔景弘)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찬성(贊成) 최숙생(崔淑生)의 아들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를 지냄.
149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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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수(崔德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해(李瀣)의 사위이며, 이황(李滉)의 문인. 별좌(別座)ㆍ현감(縣監)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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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崔璹)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낸 최창손(崔昌孫)의 아들로, 김포 현령(金浦縣令)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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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주(崔汝舟)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조광조(趙光祖)ㆍ김정(金淨)의 문인으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ㆍ성주 목사(星州牧使) 등을 지내고, 문장과 글씨에 능함.
1502~156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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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경(崔永慶)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나 정구(鄭逑)ㆍ김우옹(金宇顒) 등과 교유함.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 때 유령 인물인 길삼봉(吉三峯)으로 무고되어 정철(鄭澈)의 국문을 받다가 옥사(獄死)함.
1529~159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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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崔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인. 본관은 해주(海州). 최여우(崔汝雨)의 아들이며 이이(李珥)의 문인. 신동(神童)으로 불리며 시문(詩文)ㆍ그림ㆍ글씨에 뛰어나고 음악에도 천부적 재질을 발휘하였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함.
1568~158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