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612건)
표제어(27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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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수(閔昌洙)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좌의정(左議政) 민진원(閔鎭遠)의 아들이며, 민형수(閔亨洙)ㆍ민통수(閔通洙)의 형. 1714(숙종 40)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며, 동몽교관(童蒙敎官)ㆍ세자익위사 부솔(世子翊衛司副率) 등을 지냄.
1685~174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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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수(閔通洙)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좌의정 민진원(閔鎭遠)의 아들. 노론계의 집안 출신으로 영조(英祖)의 탕평책(蕩平策)에 거슬리는 논란을 자주 제기하였으나, 관료생활은 깨끗했고 좋은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음.
1696~174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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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남(閔馨男)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좌찬성(左贊成) 민효증(閔孝曾)의 증손이며, 풍저창 수(豊儲倉守) 민복(閔福)의 아들로, 이조 판서(吏曹判書)ㆍ우찬성(右贊成) 등을 지냄. 1613년(광해군 5) 익사(翼社)ㆍ형난(亨難)의 두 공신에 책록(策錄)됨.
1564~165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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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수(閔亨洙)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좌의정(左議政) 민진원(閔鎭遠)의 아들로, 영조의 탕평책(蕩平策)에 어긋난 언행을 함으로써 정미환국(丁未換局) 이후 실각한 아버지의 신원(伸寃)을 위하여 이광좌(李光佐)를 소척하려 함.
1690~174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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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영(朴啓榮)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예조 참판(禮曹參判) 박진원(朴震元)의 아들로, 1630년(인조 8)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등을 지냄.
159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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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언(朴東彦)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의 아들이고, 선조의 비(妃)인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동생.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강원도 소모사(江原道召募使)로 활약하였고, 봉산 군수(鳳山郡守) 등을 지냄.
1553~160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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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열(朴東說)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이항복(李恒福)과 교유했고,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 반대했음. 시문(詩文)에 능하였고 경사(經史)와 백가(百家) 및 국조의 고사에 두루 통하였음.
1564~162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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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朴瀰)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정안옹주(貞安翁主)와 혼인하여 금양위(錦陽尉)에 봉해짐. 장유(張維)ㆍ정홍명(鄭弘溟)과 교유하였고 서도에 일가를 이룸.
1592~164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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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朴善長)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남몽오(南夢鰲)의 문인으로, 예안 현감(禮安縣監)ㆍ경상 도사(慶尙都事) 등을 지냄.
1555~161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천(榮川)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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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朴世堂)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이조 참판 박정(朴炡)의 아들. 실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하였으며,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하여 주자학(朱子學)을 비판함.
1629~1703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전라도>남원ㅣ경기도>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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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채(朴世采)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성리학자. 김상헌(金尙憲)ㆍ김집(金集)에게 수학하고,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묘배향을 주장함. 예송논쟁(禮訟論爭) 때 기년설(朞年說)을 지지하고 많은 저서를 남김.
1631~169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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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숭원(朴崇元)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하여 선조로부터 보검(寶劍)을 하사받고 도승지를 거쳐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올랐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됨.
1532~159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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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종(朴承宗)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선교랑(宣敎郞) 박안세(朴安世)의 아들. 윤인(尹訒)ㆍ이인경(李寅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죽이려 할 때 인목대비를 보호하였고,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함.
1562~162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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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복(朴應福)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사간(司諫)을 지낸 박소(朴紹)의 아들로, 유조순(柳祖詢)ㆍ성제원(成悌元)ㆍ이중호(李仲虎)의 문인.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하였고, 정유재란 때 왕비를 수안(遂安)까지 호송함
1530~159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합천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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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인(朴應寅)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유조인(柳祖訒)의 문인. 지제교(知製敎) 박소(朴紹)의 아들로, 상의원 정(尙衣院正)ㆍ인의(引儀) 등을 지냄. 작은 아버지 박집(朴緝)에게 입양됨.
1532~160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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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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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金睟)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으로, 선조 때 《십구사략(十九史略)》을 개수(改修)하여 주를 붙임.
1547~161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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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金壽增)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김상헌(金尙憲)의 손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으로 들어가 은둔함.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음.
1624~1701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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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항(金壽恒)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김상헌(金尙憲)의 손자로 가학(家學)을 계승하고 송시열(宋時烈)과 교유함. 노론의 영수로서 기사환국으로 인한 남인의 재집권 때 사사됨. 시문에 뛰어나고 그의 변려문(騈儷文)은 당대 제일로 꼽힘.
1629~168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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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金壽興)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을 지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장기(長鬐)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 저서에 《퇴우당집(退憂堂集)》 5책이 있음.
1626~169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장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