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91건)
유의어(25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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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長洲)@홍만종 - 홍만종(洪萬宗)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풍산(豐山). 정두경(鄭斗卿)의 문인으로, 김득신(金得臣)ㆍ홍석기(洪錫箕) 등과 교유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등을 지냄. 학문과 문장에 뜻을 두어 역사ㆍ지리ㆍ설화ㆍ가요ㆍ시 등의 저술에 전념함.
1643~172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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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국(張持國) - 장유(張維)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효종비(孝宗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로,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왕을 호종함.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여 양명학적(陽明學的) 사고방식을 보임.
1587~1638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안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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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在先) - 박제가(朴齊家)
조선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실학자. 시문 사대가(詩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박지원(朴趾源)ㆍ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 등과 함께 북학파(北學派)를 이룸. 저서에 《북학의(北學議)》ㆍ《정유고략(貞蕤稿略)》 등이 있음. 춘당대 무과(春塘臺武科)에 장원하여 오위장(五衛將)ㆍ영평 현감(永平懸監) 등을 지냄.
1750~1805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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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積城)@성혼 - 성혼(成渾)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백인걸(白仁傑)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을 사숙하고 이이(李珥)와 도의지교를 맺음. 서인(西人) 집권 후 이조 참판 등을 지내고, 이이와 6년에 걸쳐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에 대해 논변함.
1535~159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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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貞庵) - 민우수(閔遇洙)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여흥(麗興)으로, 충문공(忠文公) 민진후(閔鎭厚)의 아들. 김창협(金昌協)ㆍ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학업에 전념함.
1694~175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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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貞菴) - 민우수(閔遇洙)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여흥(麗興)으로, 충문공(忠文公) 민진후(閔鎭厚)의 아들. 김창협(金昌協)ㆍ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학업에 전념함.
1694~175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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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貞菴)@민우수 - 민우수(閔遇洙)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여흥(麗興)으로, 충문공(忠文公) 민진후(閔鎭厚)의 아들. 김창협(金昌協)ㆍ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학업에 전념함.
1694~175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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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貞蕤) - 박제가(朴齊家)
조선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실학자. 시문 사대가(詩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박지원(朴趾源)ㆍ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 등과 함께 북학파(北學派)를 이룸. 저서에 《북학의(北學議)》ㆍ《정유고략(貞蕤稿略)》 등이 있음. 춘당대 무과(春塘臺武科)에 장원하여 오위장(五衛將)ㆍ영평 현감(永平懸監) 등을 지냄.
1750~1805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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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正齋) - 이현익(李顯益)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권상하(權尙夏)ㆍ김창협(金昌協)에게서 배우고, 생원시에 장원했으나 향리에 묻혀 학문에 힘씀. 학덕이 높아 세자시강원(世子講院)의 왕자사부(王子師傅)ㆍ진안 현감(鎭安縣監) 등을 지냄.
1678~171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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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宗儀)@윤종의 - 윤종의(尹宗儀)
조선 철종(哲宗)~고종(高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호조 참판(戶曹參判) 등을 지내고 병(兵)ㆍ농(農)ㆍ율력(律曆)ㆍ도상(圖象) 등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헌종(憲宗)의 부묘(祔廟)와 관련해 《방례고증(邦禮考證)》을 저술함.
1805~188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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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仲美)@박지원 - 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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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국(持國) - 장유(張維)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효종비(孝宗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로,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왕을 호종함.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여 양명학적(陽明學的) 사고방식을 보임.
1587~1638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안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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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충어재(注蟲魚齋) - 이덕무(李德懋)
조선 정조(正祖) 때의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박제가(朴齊家)ㆍ유득공(柳得恭)ㆍ이서구(李書九) 등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내어 문명을 떨침. 명(明)과 청(淸) 나라의 학문과 고증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가져 실질적으로는 북학을 함.
1741~17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전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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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길(浚吉) - 송준길(宋浚吉)
조선 인조(仁祖)~현종(顯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김장생(金長生)의 문인(門人)으로 기해예송(己亥禮訟) 때 기년제(朞年祭)를 주장함. 송시열(宋時烈)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李珥)의 학설을 지지함.
1606~167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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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子聞) - 남학명(南鶴鳴)
조선 숙종(肅宗) 때의 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아들. 음보(蔭補)로 주부(主簿)에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수락산(水洛山)에 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함.
1654~172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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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익(子益)@김창흡 - 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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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子靜)@김양행 - 김양행(金亮行)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민우수(閔愚洙)의 문인으로, 형조 참판(刑曹參判) 등을 지냄.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고, 이우신(李友信)ㆍ민치복(閔致福)ㆍ박준원(朴準源) 등을 배출함.
1715~177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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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淸老)@김상헌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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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淸爺)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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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淸陰)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