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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39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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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맹(具思孟)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아버지로, 좌찬성(左贊成)ㆍ공조 판서(工曹判書) 등을 지냄. 임진왜란(壬辰倭亂)ㆍ정유재란(丁酉再亂)을 거치며 공을 세워 사후(死後)에 호성(扈聖)ㆍ선무(宣武)ㆍ정난(靖難) 등의 원종공신에 책록됨.
1531~160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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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明聖王后)
조선 제18대 현종(顯宗)의 비(妃). 본관은 청풍(淸風).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의 딸로, 숙종(肅宗) 초기에 정무(政務)에 관여하여 비판을 받음.
1642~168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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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안공주(明安公主)
조선 제18대 현종(顯宗)의 딸이며 숙종(肅宗)의 여동생. 어머니는 명성왕후(明聖王后). 해창위(海昌尉) 오태주(吳泰周)와 결혼했으며, 후사는 없음.
1665~168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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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호룡(睦虎龍)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지관(地官). 본관은 사천(泗川)으로, 남인(南人)의 서얼(庶孽). 1722년(경종 2) 김일경(金一鏡)의 사주로 신임사화(辛壬士禍)를 일으키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으나,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김일경과 함께 처형됨.
1684~172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술인>지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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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세자(文孝世子)
조선 제22대 정조(正祖)의 첫째 아들. 어머니는 의빈성씨(宜嬪成氏). 세 살 때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다섯 살의 나이로 요절함.
1782~178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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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金澥)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예안(醴安). 영흥 도호부사 (永興都護府使) 김반천(金半千)의 아들. 상주 목사(尙州牧使)를 지내던 중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항전하다가 전사함.
1534~159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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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金玄成)
조선 명종(明宗)~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서화가. 본관은 김해(金海).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두루 능하였으며, 숭인전비문(崇仁殿碑文) 등 서예 유작이 전해짐.
1542~162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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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흠(金欽)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전력부위(展力副尉) 김승석(金承碩)의 아들. 청주 목사(淸州牧使)를 지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맞아 항전도중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됨.
1537~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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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근(金興根)
조선 순조(純祖)~고종(高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이조 참판(吏曹參判) 김명순(金明淳)의 아들. 《헌종실록(憲宗實錄)》ㆍ《철종실록(哲宗實錄)》편찬에 참여하고, 영의정(領議政)을 지냄.
1796~187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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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년(金禧年)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자용(金自鎔)의 아들이고, 조식(曺植)의 문인(門人).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복권되어 통례(通禮)를 지냄.
1534~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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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金喜壽)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성중(李誠中)에게 수학하고, 대전별감(大殿別監)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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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공철(南公轍)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동참하여 순정한 육경고문(六經古文)을 깊이 연찬하고,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많은 금석문(金石文)ㆍ비갈(碑碣)을 남긴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알려짐.
1760~184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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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제(南宮悌)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남궁숙(南宮淑)의 아들이며 성혼(成渾)의 사돈으로, 연안 부사(延安府使) 등을 지냄. 성혼이 그에게 보낸 편지가 《우계집(牛溪集)》에 실려 있음.
154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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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복흥(南復興)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수의부위(修義副尉) 남맹하(南孟夏)의 아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무공(武功)을 세우고, 명(明) 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접반사(接伴使)를 지냄.
155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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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문(南尙文)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명(明) 나라의 경리(經理) 양호(楊鎬)가 뛰어난 학식에 감동되어 그의 문하가 되었고, 고고한 품행으로 금오랑(金吾郞)에 등용됨.
1520~160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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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익(南龍翼)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내고,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문명을 떨쳤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에 연루되어 명천(明川)에 유배되어 죽음.
1628~16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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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용(南有容)
조선 경종(景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남용익(南龍翼)의 증손.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과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음.
1698~177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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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신(南以信)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참판 남호(南琥)의 아들이자, 이조 판서 남이공(南以恭)의 형으로, 경기 감사(京畿監司) 시절에 주문사(奏聞使)로 명(明) 나라에 다녀왔으며,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냄.
1562~160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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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명(南鶴鳴)
조선 숙종(肅宗) 때의 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아들. 음보(蔭補)로 주부(主簿)에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수락산(水洛山)에 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함.
1654~172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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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기(南漢紀)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남정중(南正重)의 아들이며, 남유용(南有容)의 아버지로, 내직과 외직을 두루 역임한 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고, 추은(推恩)으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감.
1675~174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