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80건)
유의어(215건)
-
의재(毅齋)@장헌세자 - 장헌세자(莊獻世子)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이자 22대 정조(正祖)의 아버지. 이복형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요절하자 세자에 책봉되어 1749년(영조 25) 영조의 명을 받고 15세에 대리기무(代理機務)를 봄. 김한구(金漢耉) 일파의 모함을 받아 뒤주에 갇혀 죽음.
1735~176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의황제(毅皇帝)@장헌세자 - 장헌세자(莊獻世子)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이자 22대 정조(正祖)의 아버지. 이복형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요절하자 세자에 책봉되어 1749년(영조 25) 영조의 명을 받고 15세에 대리기무(代理機務)를 봄. 김한구(金漢耉) 일파의 모함을 받아 뒤주에 갇혀 죽음.
1735~176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간(夷簡)@진남군 - 진남군(鎭南君)
조선 제2대 정종(定宗)의 여섯째 아들. 숙의이씨(淑儀李氏)의 소생으로, 종실 중에 가장 어질다고 하여 장원서 제조(掌苑署提調)에 임명됨.
1406~147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곤령(李崑齡) - 순회세자(順懷世子)
조선 제13대 명종(明宗)의 외아들.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소생으로, 7살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살의 나이로 요절함.
1551~156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당(李瑭) - 영해군(寧海君)
조선 제4대 세종(世宗)의 아홉 번째 서자. 신빈김씨(愼嬪金氏)의 소생으로, 처음 이름은 장(璋)이었으나 후일 당(瑭)으로 바꿈.
1435~147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애(夷哀) - 담양군(潭陽君)
조선 제4대 세종(世宗)의 열 번째 서자. 신빈김씨(愼嬪金氏)의 소생으로, 일찍 죽었으므로 동모형(同母兄)인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아들로 후사를 이음.
1439~145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양(夷襄) - 담양군(潭陽君)
조선 제4대 세종(世宗)의 열 번째 서자. 신빈김씨(愼嬪金氏)의 소생으로, 일찍 죽었으므로 동모형(同母兄)인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아들로 후사를 이음.
1439~145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염(李恬)@회산군 - 회산군(檜山君)
조선 제9대 성종(成宗)의 다섯째 아들. 숙의(淑儀) 남양홍씨(南陽洪氏) 소생으로, 김굉필(金宏弼)에게 가르침을 받음. 연산군(燕山君) 때 궁전(宮田)을 반납했다가 중중(中宗)이 즉위하자 노비(奴婢)와 전답(田畓)ㆍ사저(私邸)를 하사받음.
1481~151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요정(二樂亭) - 의안대군(義安大君)
조선 태조(太祖)의 이복동생. 태조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우는 등 여러 차례 공신(功臣)에 책록되고, 태종(太宗) 때 외척인 민무구(閔無咎)ㆍ민무질(閔無疾) 형제의 처벌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림.
1348~1408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함경도>영흥ㅣ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왕실>왕자
-
이진국(李鎭國) - 임해군(臨海君)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의 첫째 서자.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됨. 동생 광해군(光海君)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다가 죽음.
1574~160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이호(李祜) - 효령대군(孝寧大君)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의 둘째 아들.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의 소생으로,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세종ㆍ문종ㆍ단종ㆍ세조ㆍ예종ㆍ성종으로부터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았으며, 많은 불사(佛事)를 주관하여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공헌함.
1396~148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익안군(益安君) - 익안대군(益安大君)
조선 제1대 태조(太祖)의 셋째 아들.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 소생으로, 제1차 왕자(王子)의 난(亂) 때 이방원(李芳遠)을 보좌하여 정사공신(定社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는 중립을 지킴.
?~1404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왕실>왕자
-
익양(益陽)@익양군 - 익양군(益陽君)
조선 제11대 성종(成宗)의 일곱 번째 서자. 어머니는 숙의홍씨(淑儀洪氏).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어 종부시(宗簿寺) 등의 제조(提調)와 종친부의 유사당상(有司堂上)을 겸임함.
1488~155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익양군(翼陽君) - 익양군(益陽君)
조선 제11대 성종(成宗)의 일곱 번째 서자. 어머니는 숙의홍씨(淑儀洪氏).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어 종부시(宗簿寺) 등의 제조(提調)와 종친부의 유사당상(有司堂上)을 겸임함.
1488~155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인(裀) - 함녕군(咸寧君)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의 둘째 서자. 신빈(信嬪) 신씨(辛氏)의 소생으로, 세종(世宗) 때 계품사(計稟使)로서 중국에 가서 금ㆍ은의 공물을 면제받고 돌아옴.
1402~146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왕(▼(氵+㞷)) - 소현세자(昭顯世子)
조선 제16대 인조(仁祖)의 맏아들. 효종(孝宗)의 형이며, 부인은 민회빈강씨(愍懷嬪姜氏). 병자호란 때 아우인 봉림대군(鳳林大君) 등과 함께 심양(瀋陽)에 끌려가 9년간 고초를 겪다가 귀국하였으나, 두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급사함.
1612~164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용(瑢) - 안평대군(安平大君)
조선 제4대 세종(世宗)의 셋째 아들. 김종서(金宗瑞) 등과 함께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세력에 맞서다가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역모 혐의로 유배된 후 사사됨. 시(詩)ㆍ서(書)ㆍ화(畫)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불렸고, 당대 제일의 명필(名筆)로 꼽힘.
1418~145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왕실>왕자
-
유(瑜)@이유 - 금성대군(錦城大君)
조선 제4대 세종(世宗)의 여섯째 아들. 태조(太祖)의 여덟째 아들인 의안대군(宜安大君) 이방번(李芳蕃)의 후사로 출계함.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맞서 조카 단종(端宗)을 보호하다가 삭녕(朔寧)에 유배된 후, 단종복위를 모의한 일이 실패하여 처형당함.
1426~145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윤관(允寬) - 장헌세자(莊獻世子)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이자 22대 정조(正祖)의 아버지. 이복형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요절하자 세자에 책봉되어 1749년(영조 25) 영조의 명을 받고 15세에 대리기무(代理機務)를 봄. 김한구(金漢耉) 일파의 모함을 받아 뒤주에 갇혀 죽음.
1735~176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
원생(元生) - 의평군(義平君)
조선 제2대 정종(定宗)의 첫 번째 서자. 숙의지씨(淑儀池氏)의 소생으로, 금천 감무(衿川監務) 최치숭(崔致崇)의 딸과 혼인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