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481건)
표제어(1,10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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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金一鏡)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소론(小論)의 거두로 신임사화(辛壬士禍)를 주도하여 노론(老論) 수백 명을 살해 또는 추방하고 우참찬에 올랐으나, 영조가 즉위하여 노론이 재집권하자 친국(親鞫)을 받은 뒤 참형당함.
1662~172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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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중(金自重)
조선 후기의 유학. 본관은 광주(光州). 공조 좌랑(工曹佐郞)을 지낸 김덕망(金德望)의 아들로, 1618년(광해군 10)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함.
158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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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金璋)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안산(安山). 승문원 교감(承文院校勘)을 지낸 김맹강(金孟鋼)의 아들로, 1513년(중종 8)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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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金長生)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이이(李珥)의 문인(門人)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서인(西人)의 영수 역할을 하였고,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함.
1548~163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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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
조선 순조(純祖)~철종(哲宗) 때의 문신ㆍ서화가(書畫家). 본관은 경주(慶州). 병조 참판(兵曹參判)ㆍ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지냄. 추사체(秋史體)를 대성한 명필로 예서(隸書)ㆍ행서(行書)에 능하며, 그림과 금석학(金石學) 등에도 조예가 깊음.
1786~1856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예산ㅣ경기도>과천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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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겸(金濟謙)
조선 숙종(肅宗)~경종(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아들.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죽은 3학사(學士)의 한 사람으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됨.
1680~172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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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金鍾秀)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으로, 김치만(金致萬)의 아들. 노론(老論) 벽파(僻派)의 영수로서 정조의 신임을 받고, 임성주(任聖周)ㆍ윤시동(尹蓍東)ㆍ김상묵(金尙默) 등과 교유함.
1728~179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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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후(金鍾厚)
조선 정조(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김치만(金致萬)의 아들이며, 민우수(閔遇洙)의 문인(門人). 어려서부터 사부(詞賦)에 능하여 문명이 있었으나, 정치적 전변을 거듭하여 비난받음.
1721~178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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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명(金佐明)
조선 인조(仁祖)~현종(顯宗) 때의 문신. 영의정 김육(金堉)의 아들로, 대사헌(大司憲)ㆍ병조 판서(兵曹判書) 등을 지냄. 영의정(領議政)ㆍ청릉부원군(淸陵府院君)에 추증되고, 현종의 묘정에 배향(配享)됨.
1616~167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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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澍)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明) 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했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음. 문장이 뛰어나고 초서를 잘 씀.
1512~156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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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金濬)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강릉(江陵). 김경제(金敬悌)의 아들로 1540년(중종 35)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함. 박승임(朴承任)이 그에게 차운한 시가 《소고집(嘯皐集)》에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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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남(金止男)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낸 김표(金彪)의 아들로, 경상 감사(慶尙監司) 등을 지냈음. 광해군(光海君) 때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왕후(仁穆王后)를 폐하려는 이이첨(李爾瞻) 일당의 죄상을 폭로함.
1559~163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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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종(金振宗)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된 뒤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 죽음.
1496~155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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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질(金礩)
조선 문종(文宗)~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성삼문(成三問)ㆍ박팽년(朴彭年) 등의 단종(端宗) 복위 계획을 고변하여 사육신(死六臣) 사건의 계기를 제공함.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편찬에 참여함.
1422~147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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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질충(金質忠)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부호군(副護軍) 김경(金鏡)의 아들.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 등을 지내고, 《중종실록(中宗實錄)》ㆍ《인종실록(仁宗實錄)》편찬에 참여함.
151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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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金集)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예학(禮學)을 대성시킴. 대사헌(大司憲)ㆍ좌찬성(左贊成) 등을 지내고, 효종과 북벌(北伐)을 계획함.
1574~1656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연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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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金纘先)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김안로(金安老)의 손자로, 1569년(선조 2) 별시(別試)에 급제하여 감정(監正) 등을 역임함.
1535~?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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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즙(金昌緝)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다섯째 아들. 조봉원(趙逢源)의 문인이며, 여섯 형제들이 문장의 대가(大家)라 육창(六昌)이라 불림.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된 뒤 학문에 전념하였고,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냄.
1662~171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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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金昌集)
조선 숙종(肅宗)~경종(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협(金昌協)의 형. 노론(老論)의 대표 인물로,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냈으나, 경종의 후사로 연잉군(延礽君:영조)를 세웠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죽임을 당함.
1648~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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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