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17건)
유의어(10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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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상공(松江相公) - 정철(鄭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연일(延日). 판관(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沈)의 아들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인(門人). 예조 판서(禮曹判書)ㆍ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함.
1536~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창평ㅣ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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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옹(松江翁) - 정철(鄭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연일(延日). 판관(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沈)의 아들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인(門人). 예조 판서(禮曹判書)ㆍ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함.
1536~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창평ㅣ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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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로(松老) - 정철(鄭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연일(延日). 판관(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沈)의 아들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인(門人). 예조 판서(禮曹判書)ㆍ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함.
1536~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창평ㅣ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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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야(松爺) - 정철(鄭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연일(延日). 판관(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沈)의 아들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인(門人). 예조 판서(禮曹判書)ㆍ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함.
1536~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창평ㅣ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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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옹(松翁)@정철 - 정철(鄭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연일(延日). 판관(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沈)의 아들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인(門人). 예조 판서(禮曹判書)ㆍ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함.
1536~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창평ㅣ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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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汾西) - 박미(朴瀰)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정안옹주(貞安翁主)와 혼인하여 금양위(錦陽尉)에 봉해짐. 장유(張維)ㆍ정홍명(鄭弘溟)과 교유하였고 서도에 일가를 이룸.
1592~164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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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思穎) - 남공철(南公轍)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동참하여 순정한 육경고문(六經古文)을 깊이 연찬하고,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많은 금석문(金石文)ㆍ비갈(碑碣)을 남긴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알려짐.
1760~184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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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寗漢) - 김영한(金寗漢)
근대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김홍진(金鴻鎭)의 아들로, 형조 판서 김석진(金奭鎭)에게 입양됨.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의 9대손(代孫)으로, 박광전(朴光前)의 《죽천집(竹川集)》을 비롯한 많은 문집에 서문(序文)ㆍ발문(跋文)을 씀.
1878~? 한국>근대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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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간(良簡)@황여헌 - 황여헌(黃汝獻)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장수(長水).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으로, 김해 부사(金海府使)를 지낸 황관(黃瓘)의 아들이며 황맹현(黃孟獻)의 아우. 문장과 글씨에 능하며, 〈죽지사(竹枝詞)〉라는 작품은 명(明) 나라에서도 격찬을 받음.
148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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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정(雙井) - 황여헌(黃汝獻)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장수(長水).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으로, 김해 부사(金海府使)를 지낸 황관(黃瓘)의 아들이며 황맹현(黃孟獻)의 아우. 문장과 글씨에 능하며, 〈죽지사(竹枝詞)〉라는 작품은 명(明) 나라에서도 격찬을 받음.
148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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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눌(安訥) - 이안눌(李安訥)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덕수(德水).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의 증손이며,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종숙(從叔). 당시(唐詩)에 능하여 이태백에 비유되었고 글씨도 잘 썼음.
1571~163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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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배당(安排堂) - 권벽(權擘)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문인. 시문(詩文)이 뛰어나 명(明) 나라에 오가는 외교 문서를 전담하고, 《중종실록(中宗實錄)》ㆍ《인종실록(仁宗實錄)》ㆍ《명종실록(明宗實錄)》편찬에 참여함.
1520~159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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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군(鰲恩君) - 이경일(李敬一)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경주(慶州). 진사(進士) 이종열(李宗悅)의 아들로, 도사(都事) 이종악(李宗岳)에게 출계함. 좌의정 등을 지내고, 저서에 《청헌유고(聽軒遺稿)》가 있음.
1734~182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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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煙湘) - 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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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燕巖) - 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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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외사(冽上外史) - 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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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재(習齋)@권벽 - 권벽(權擘)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문인. 시문(詩文)이 뛰어나 명(明) 나라에 오가는 외교 문서를 전담하고, 《중종실록(中宗實錄)》ㆍ《인종실록(仁宗實錄)》ㆍ《명종실록(明宗實錄)》편찬에 참여함.
1520~159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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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汝獻) - 황여헌(黃汝獻)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장수(長水).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으로, 김해 부사(金海府使)를 지낸 황관(黃瓘)의 아들이며 황맹현(黃孟獻)의 아우. 문장과 글씨에 능하며, 〈죽지사(竹枝詞)〉라는 작품은 명(明) 나라에서도 격찬을 받음.
148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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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자(陽川子) - 허봉(許篈)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양천(陽川).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으로, 동인(東人)의 선봉이 되어 심의겸(沈義謙) 등 서인(西人)들과 대립하고, 이이(李珥)의 과실을 탄핵하였다가 갑산(甲山)에 유배됨. 후에 금강산에서 병사(病死)함.
1551~158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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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당(於于堂) - 유몽인(柳夢寅)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흥양(興陽)으로, 제용감 주부(濟用監主簿) 유탱(柳樘)의 아들. 한때 성혼(成渾)에게 수학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명외교를 담당하는 등 공을 세웠으나, 인조 때 무고로 인해 반역죄로 처형됨. 저서로 《어우야담(於于野談)》 등이 있음.
1559~162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