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906건)
유의어(4,6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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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재(嘐嘐齋) - 김용겸(金用謙)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김창즙(金昌緝)의 아들. 이재(李縡)와 박필주(朴弼周)에게 경서(經書)와 예서(禮書)를 배웠으며,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등을 지냄.
1702~178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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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厚)@서후 - 서후(徐厚)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학문이 뛰어나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사유(師儒)에 뽑히기도 하였으나 조광조를 비판하여 사림(士林)의 원망을 받음. 군무(軍務)에 큰 관심을 기울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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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珝)@이후 - 신성군(信城君)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의 네 번째 서자.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소생으로,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한때 세자 책봉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좌절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란 도중 의주(義州)에서 병사함.
1578~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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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갑(後甲) - 신후갑(愼後甲)
조선 세종(世宗) 때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지낸 신자건(愼自健)의 아버지로, 1438년(세종 20)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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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경(厚卿) - 구인기(具仁墍)
조선 광해군(光海君)~숙종(肅宗) 때의 문신. 인조의 모후(母后)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조카로,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록됨. 벼슬이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사후(死後)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됨.
1597~167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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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 - 원경왕후(元敬王后)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의 비(妃). 1ㆍ2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워 태종이 즉위하는 데 일조하였으나, 태종 즉위 후 빈어(嬪御) 문제와 친정 형제들을 숙청한 일로 불화함.
1365~1420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여주ㅣ서울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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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릉(厚陵)@정종 - 정종(定宗)@조선
조선 제2대 왕. 재위 1398~1400. 태조(太祖)와 정안왕후(定安王后)의 소생. 고려 후기에 아버지를 따라 왜구를 토벌하는 데 많은 전공을 세우고 왕자의 난을 계기로 왕위에 올랐지만, 골육상쟁의 재현을 우려하여 정안군(靖安君)을 세자로 삼고 양위함.
1357~141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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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릉(厚陵) - 정안왕후(定安王后)
조선 제2대 정종(定宗)의 비.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김천서(金天瑞)의 딸로 정종이 즉위하면서 덕비(德妃)에 진봉(進封)되었고, 정종(定宗)이 태종(太宗)에게 전위하고 상왕(上王)이 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가상(加上)받았음.
1355~141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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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厚伯) - 양녕대군(讓寧大君)
조선 태종(太宗)의 첫째 아들. 1404년(태종 4)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자유분방한 성품과 행동으로 인해 유정현(柳廷顯) 등의 청원으로 폐위되고, 아우인 충녕대군(忠寧大君)에게 양위됨.
1394~146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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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봉(後峰) - 이담(李湛)@1510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용인(龍仁).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양산(梁山)에 부처(付處)되었다가 복직된 후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냄. 성리학자로서 의약ㆍ천문ㆍ산수ㆍ궁술ㆍ서화에도 능함.
1510~157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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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後卨) - 성후설(成後卨)
조선 인조(仁祖)~현종(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질부(質夫) 성이문(成以文)의 손자. 예빈시 정(禮賓寺正)ㆍ승정원 우승지(承政院右承旨)ㆍ수원 부사(水原府使) 등을 지냄.
1615~167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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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영어은(後潁漁隱) - 이시발(李時發)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임진왜란 때 접반관(接伴官) 등으로 활약하고. 광해군(光海君) 때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론에 반대함. 인조반정 후 이괄(李适)의 난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우고 형조 판서 등을 지냄.
1569~162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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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喉院) - 승정원(承政院)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관청. 국왕과 밀착되어 중추적인 정치기구의 역할을 하였으며, 승선원(承宣院)ㆍ비서감(秘書監)ㆍ비서원(秘書院)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07년에 폐지됨.
한국>조선시대 , 서울 , 법제>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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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勛) - 조훈(趙勛)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문신 조광림(趙廣臨)ㆍ조광보(趙廣輔)ㆍ조광좌(趙廣佐)의 아버지로, 금산 군수(金山郡守)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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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薰)@박훈 - 박훈(朴薰)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박증영(朴增榮)의 아들이며 참판(參判) 이언명(李彦明)의 장인으로,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올라 ‘국기(國器)’라는 명성을 들음.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으로, 청주(淸州) 신항서원(莘巷書院)에 배향됨.
1484~1540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청주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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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 훈민정음(訓民正音)
조선 세종(世宗) 때 창제된 훈민정음(訓民正音)에 관한 한문 해설서. 33장 1책. 목판본. 국자(國字)인 훈민정음을 반포함에 있어서 정인지(鄭麟趾) 등의 집현전(集賢殿) 학자들이 세종의 명을 받아 간행함.
144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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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萱)@이훤 - 이훤(李萱)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예안(禮安)으로, 연산 현감(連山縣監)을 지낸 이보간(李輔幹)의 아들. 1513년(중종 8년) 생원시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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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소무(徽文昭武) - 중종(中宗)@조선
조선 제11대 국왕. 재위 1506~1544.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즉위하여 연산군의 폐정(弊政)을 개혁하고, 조광조(趙光祖) 등을 중용하여 왕도정치를 실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면서 별다른 치적을 남기지 못함.
1488~154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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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백(輝伯) - 어유봉(魚有鳳)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으로, 1722년(경종 2) 신임사화(申壬士禍) 때 김창협이 화를 당하자 유생들과 함께 변호하다가 파직됨. 세자시강원 찬선(世子侍講院贊善)을 지내고, 저서로 《기원집(杞園集)》 등이 있음.
1672~174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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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서(輝瑞) - 경종(景宗)@조선
조선 제20대 왕. 재위 1720~1724. 숙종(肅宗)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희빈장씨(禧嬪張氏). 재위 기간 중 당쟁(黨爭)이 절정을 이룬 가운데 신변상으로나 정치상으로 많은 곤란을 겪음.
1688~172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