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906건)
유의어(4,6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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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부자(洛陽夫子) -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김굉필(金宏弼)의 문인(門人)으로, 도학정치(道學政治)를 주창하며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하였으나 훈구(勳舊) 세력이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인해 죽임을 당함.
1482~151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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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樂之) - 무산군(茂山君)
조선 제9대 성종(成宗)의 열두 번째 아들. 명빈김씨(明嬪金氏)의 소생으로, 학문은 물론 서예에도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알려짐.
1490~1525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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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樂天)@중종 - 중종(中宗)@조선
조선 제11대 국왕. 재위 1506~1544.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즉위하여 연산군의 폐정(弊政)을 개혁하고, 조광조(趙光祖) 등을 중용하여 왕도정치를 실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면서 별다른 치적을 남기지 못함.
1488~154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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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촌(洛村) - 박충원(朴忠元)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성절사(聖節使)의 부사(副使)로 명(明) 나라에 다녀오고, 대제학(大提學)과 예조(禮曹)ㆍ병조(兵曹)의 판서를 지냄.
1507~1581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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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촌(駱村) - 박충원(朴忠元)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성절사(聖節使)의 부사(副使)로 명(明) 나라에 다녀오고, 대제학(大提學)과 예조(禮曹)ㆍ병조(兵曹)의 판서를 지냄.
1507~1581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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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산(駱駝山) - 낙산(駱山)
서울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 이름. 주산(主山)의 좌청룡에 해당하며, 산 모습이 낙타처럼 생겼다 하여 낙타산(駱駝山) 또는 타락산(駝駱山)이라고도 부름.
서울 , 지명>자연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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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헌(樂軒) - 노집(盧輯)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으로,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낸 노미수(盧尾壽)의 아들. 단성 현감(丹城縣監)ㆍ조지서 사지(造紙署司紙)를 지냈음.
1489~1536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신창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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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瀾) - 이난(李瀾)
조선 전기의 종친. 세종(世宗)의 두 번째 서자인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여섯째 아들로, 방산수(方山守)에 봉해짐.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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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蘭谷)@정선 - 정선(鄭歚)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화가. 본관은 광산(光山). 그림에 뛰어나 현실감 넘치는 독창적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하고, 금강전도(金剛全圖)ㆍ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등 많은 명작을 남김.
1676~175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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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상(鸞祥) - 김난상(金鸞祥)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도(淸道). 이황(李滉)ㆍ정황(丁熿) 등과 교유하고, 1545년(인종 1) 을사사화(乙巳士禍)와 1547년(명종 2)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으로 유배되었으나, 선조 때 대사성(大司成) 등을 지냄.
1507~157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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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재(蘭齋) - 남응운(南應雲)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참판 남세건(南世健)의 아들로,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내직과 외직을 두루 지내고, 전서(篆書)와 주서(籒書) 등 글씨에도 뛰어나 여러 작품을 남김.
1509~158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무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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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鑾坡)@홍문관 - 홍문관(弘文館)
조선 세조(世祖) 때 설치한 궁중의 경서(經書)ㆍ사적(史籍)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사헌부(司憲府)ㆍ사간원(司諫院)과 함께 삼사(三司)라고 불림.
146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법제>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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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攬) - 권람(權攬)
조선 문종(文宗)~세조(世祖) 때의 문신.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세조 즉위의 기반을 마련함. 《국조보감(國朝寶鑑)》ㆍ《동국통감(東國通鑑)》 편찬에 참여함.
1416~1465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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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南澗)@홍처량 - 홍처량(洪處亮)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지낸 홍명현(洪命顯)의 아들로, 예조 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내고 《인조실록(仁祖實錄)》 편찬에 참여함.
1607~168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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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南溪)@허충길 - 허충길(許忠吉)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허백기(許伯琦)의 아들이며 김안국(金安國)의 문인(門人)으로, 명종(明宗) 때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의주(義州)로 유배되고, 후에 영천 군수(榮川郡守)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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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南溪) - 박세채(朴世采)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성리학자. 김상헌(金尙憲)ㆍ김집(金集)에게 수학하고,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묘배향을 주장함. 예송논쟁(禮訟論爭) 때 기년설(朞年說)을 지지하고 많은 저서를 남김.
1631~169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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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南谿) - 허충길(許忠吉)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허백기(許伯琦)의 아들이며 김안국(金安國)의 문인(門人)으로, 명종(明宗) 때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의주(義州)로 유배되고, 후에 영천 군수(榮川郡守)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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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南皐) - 신흠(申欽)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평산(平山). 계축화옥(癸丑禍獄) 때 선조의 유교칠신(遺敎七臣)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었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삼정승을 지냄. 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ㆍ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으로 일컬어짐.
1566~1628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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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곡(嵐谷) - 이정은(李貞恩)
조선 태종(太宗)의 아들인 익녕군(益寧君) 이치(李袳)의 둘째 아들. 음률(音律)과 시(詩)에 뛰어나고 청담파(淸談派)의 일원이 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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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곽(南郭)@박동열 - 박동열(朴東說)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이항복(李恒福)과 교유했고,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 반대했음. 시문(詩文)에 능하였고 경사(經史)와 백가(百家) 및 국조의 고사에 두루 통하였음.
1564~162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