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906건)
표제어(1,26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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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년(金禧年)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자용(金自鎔)의 아들이고, 조식(曺植)의 문인(門人).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복권되어 통례(通禮)를 지냄.
1534~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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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서(金熙瑞)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광주(光州).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을 지낸 김명윤(金明胤)의 맏아들로, 1543년(중종 38)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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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金喜壽)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성중(李誠中)에게 수학하고, 대전별감(大殿別監)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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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식(羅湜)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정(安定).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흥양(興陽)으로 유배되었다가 강계(江界)에서 사사(賜死)됨.
1498~154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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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駱山)
서울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 이름. 주산(主山)의 좌청룡에 해당하며, 산 모습이 낙타처럼 생겼다 하여 낙타산(駱駝山) 또는 타락산(駝駱山)이라고도 부름.
서울 , 지명>자연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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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공철(南公轍)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동참하여 순정한 육경고문(六經古文)을 깊이 연찬하고,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많은 금석문(金石文)ㆍ비갈(碑碣)을 남긴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알려짐.
1760~184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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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제(南宮悌)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남궁숙(南宮淑)의 아들이며 성혼(成渾)의 사돈으로, 연안 부사(延安府使) 등을 지냄. 성혼이 그에게 보낸 편지가 《우계집(牛溪集)》에 실려 있음.
154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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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맹하(南孟夏)
조선 명종(明宗) 때의 유학. 본관은 의령(宜寧). 통례(通禮)를 지낸 남경춘(南慶春)의 아들로, 송인(宋寅)ㆍ박민헌(朴民獻)ㆍ김사원(金士元)과 친교(親交)함.
1523~155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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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변(南忭)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형조 정랑(刑曹正郞)을 지낸 남이(南儞)의 아들.
1454~149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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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복흥(南復興)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수의부위(修義副尉) 남맹하(南孟夏)의 아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무공(武功)을 세우고, 명(明) 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접반사(接伴使)를 지냄.
155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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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문(南尙文)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명(明) 나라의 경리(經理) 양호(楊鎬)가 뛰어난 학식에 감동되어 그의 문하가 되었고, 고고한 품행으로 금오랑(金吾郞)에 등용됨.
1520~160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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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민(南舜民)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충청도 수군절도사 남효원(南孝元)의 아들. 독서를 즐겨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역학(易學)에 정통했음.
1484~156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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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언경(南彦經)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반박하고 양명학(陽明學) 체계를 완성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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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언기(南彦紀)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김인후(金麟厚)ㆍ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선조(宣祖) 초 영의정 이탁(李鐸)의 천거로 동몽교관(童蒙敎官)ㆍ빙고별좌(氷庫別坐)에 임명됨.
1534~?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동복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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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익(南龍翼)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내고,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문명을 떨쳤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에 연루되어 명천(明川)에 유배되어 죽음.
1628~16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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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용(南有容)
조선 경종(景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남용익(南龍翼)의 증손.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과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음.
1698~177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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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응운(南應雲)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참판 남세건(南世健)의 아들로,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내직과 외직을 두루 지내고, 전서(篆書)와 주서(籒書) 등 글씨에도 뛰어나 여러 작품을 남김.
1509~158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무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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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신(南以信)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참판 남호(南琥)의 아들이자, 이조 판서 남이공(南以恭)의 형으로, 경기 감사(京畿監司) 시절에 주문사(奏聞使)로 명(明) 나라에 다녀왔으며,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냄.
1562~160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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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원(南致元)
조선 성종(成宗)의 부마. 본관은 의령(宜寧). 성종(成宗)의 넷째 딸 경순옹주(慶順翁主)를 맞아들여 의성위(宜城尉)에 봉해졌음.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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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명(南鶴鳴)
조선 숙종(肅宗) 때의 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아들. 음보(蔭補)로 주부(主簿)에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수락산(水洛山)에 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함.
1654~172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