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906건)
표제어(1,26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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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응인(韓應寅)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부사직(副司直) 한경남(韓敬男)의 아들. 한어(漢語)에 능하여 수차례 명(明) 나라에 다녀오고, 임진왜란 때 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의 접반관(接伴官)이 됨.
1554~161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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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유(韓宗愈)
고려 충렬왕(忠烈王)~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밀직부사(密直副使) 한영(韓英)의 아들. 이조년(李兆年)과 더불어 충숙왕(忠肅王)ㆍ충혜왕(忠惠王) 등에게 충절을 다하고, 조적(曺頔)의 난에 공을 세워 공신에 책록됨.
1287~1354 한국>고려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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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韓澍)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당진(唐津). 통사랑(通仕郞) 한근(韓瑾)의 아들로, 1533년(중종 28)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인(舍人) 등을 지냄.
1511~?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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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겸(韓浚謙)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경성 판관(鏡城判官)을 지낸 한효윤(韓孝胤)의 아들이며, 인조의 장인. 예학(禮學)과 국가의 고사(故事)에 밝고,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편찬에 참여함.
1557~162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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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겸(韓重謙)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 본관은 청주(淸州). 경성 판관(鏡城判官)을 지낸 한효윤(韓孝胤)의 아들로, 1579년(선조 12)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1555~157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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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유(韓昌愈)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좌승지(左承旨)를 지낸 한충(韓忠)의 아버지. 1496년(연산군 2)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고, 장흥고 주부(長興庫主簿)를 지냈으며,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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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韓灝)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당진(唐津). 통사랑(通仕郞) 한근(韓瑾)의 아들로, 1546년(명종 1)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판교(判校) 등을 지냄.
151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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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원(韓效元)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철원 부사(鐵原府使) 한증(韓曾)의 아들. 1501년(연산군 7)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공조 판서(工曹判書)ㆍ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1468~1534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나주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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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군(咸寧君)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의 둘째 서자. 신빈(信嬪) 신씨(辛氏)의 소생으로, 세종(世宗) 때 계품사(計稟使)로서 중국에 가서 금ㆍ은의 공물을 면제받고 돌아옴.
1402~146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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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군(海安君)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의 두 번째 서자. 숙의홍씨(淑儀洪氏) 소생.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과 사옹원(司饔院)ㆍ문소전(文昭殿)의 도제조(都提調)를 지냄.
1511~157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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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許穆)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양천(陽川).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예송(禮訟) 논쟁에서 남인(南人)을 주도하며 송시열(宋時烈)의 서인(西人)과 대립함. 사상적으로 이황(李滉)ㆍ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李瀷)에게 연결함.
1595~168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연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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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벽(許璧)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양천(陽川). 허윤관(許允寬)의 아들로, 1528년(중종 23)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였으며, 홍섬(洪暹)의 《인재집(忍齋集》에 그에 대한 만사(輓詞)가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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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許篈)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양천(陽川).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으로, 동인(東人)의 선봉이 되어 심의겸(沈義謙) 등 서인(西人)들과 대립하고, 이이(李珥)의 과실을 탄핵하였다가 갑산(甲山)에 유배됨. 후에 금강산에서 병사(病死)함.
1551~158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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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엽(許曄)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허균(許筠)의 아버지로, 명종 때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원을 청하고 허자(許磁) 등의 무죄를 논하다가 파직됨. 선조 때 김효원(金孝元)과 함께 동인(東人)의 영수(領袖)가 되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됨.
1517~158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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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충길(許忠吉)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허백기(許伯琦)의 아들이며 김안국(金安國)의 문인(門人)으로, 명종(明宗) 때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의주(義州)로 유배되고, 후에 영천 군수(榮川郡守)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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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한(許澣)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서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허담(許聃)의 아들로, 군자감 부봉사(軍資監副奉事) 등을 지냄. 그림은 매(梅)ㆍ죽(竹)을 잘 그리고, 시(詩)는 당시(唐詩)의 운격(韶格)에 능함.
1492~153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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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항(許沆)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냈으나, 김안로(金安老)의 일당으로 옥사를 함부로 일으키고 무고한 사림을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질렀으므로, 김안로ㆍ채무택(蔡無擇) 등과 함께 ‘정유삼흉(丁酉三兇)’으로 불림.
?~153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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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흠(許欽)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김해(金海).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허금수(許金壽)의 아들로, 독서하기를 좋아하고 벗들과 우애가 깊었음.
1472~1515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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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흡(許洽)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허확(許確)의 아들이며 허항(許沆)의 형으로, 1513년(중종 8)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공조 판서(工曹判書)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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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경왕후(獻敬王后)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비(妃)이자 정조(正祖)의 어머니. 본관은 풍산(豊山)으로 홍봉한(洪鳳漢)의 딸. 자서전적 사소설체인 《한중록(恨中錄)》을 지음.
1735~181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