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0건)
유의어(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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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孤竹)@최경창 - 최경창(崔慶昌)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李珥)ㆍ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리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도 불림. 종성 부사(鍾城府使) 등을 지냄.
1539~158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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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사군(孤竹使君) - 최경창(崔慶昌)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李珥)ㆍ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리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도 불림. 종성 부사(鍾城府使) 등을 지냄.
1539~158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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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자(孤竹子) - 최경창(崔慶昌)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李珥)ㆍ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리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도 불림. 종성 부사(鍾城府使) 등을 지냄.
1539~158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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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可久)@최덕지 - 최덕지(崔德之)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ㆍ문신.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의(參議) 최담(崔霮)의 아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음.
1384~14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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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嘉運) - 최경창(崔慶昌)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李珥)ㆍ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리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도 불림. 종성 부사(鍾城府使) 등을 지냄.
1539~158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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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창(慶昌)@최경창 - 최경창(崔慶昌)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李珥)ㆍ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리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도 불림. 종성 부사(鍾城府使) 등을 지냄.
1539~158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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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吉遠) - 신희남(愼喜男)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붕당을 싫어하여 자청해서 금산 군수(金山郡守)로 나갔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갔으며, 시와 글씨에 뛰어나 한호(韓濩)에게 서예를 가르침.
1517~1591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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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봉(德鳳) - 민덕봉(閔德鳳)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의서 습독관(醫書習讀官)을 지낸 민우필(閔友弼)의 아들. 1573년(선조 6) 명(明) 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하여 나갔다가 객사(客舍)에서 죽음.
1514~157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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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지(德之) - 최덕지(崔德之)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ㆍ문신.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의(參議) 최담(崔霮)의 아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음.
1384~14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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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량왜변(達梁倭變) - 을묘왜변(乙卯倭變)
조선 명종(明宗) 때 왜구(倭寇)가 전라남도 영암(靈岩)ㆍ강진(康津)ㆍ진도(珍島) 일대에 침입한 사건. 비변사(備邊司)가 상설기관으로서 위치를 굳히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됨.
15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진도ㅣ전라도>영암ㅣ전라도>강진 , 사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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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永源) - 최영원(崔永源)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영암(靈巖). 영암 군수(靈巖郡守)를 지낸 최형한(崔亨漢)의 아버지.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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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촌(烟村) - 최덕지(崔德之)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ㆍ문신.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의(參議) 최담(崔霮)의 아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음.
1384~14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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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촌(煙村) - 최덕지(崔德之)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ㆍ문신.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의(參議) 최담(崔霮)의 아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음.
1384~14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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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瀯溪) - 신희남(愼喜男)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붕당을 싫어하여 자청해서 금산 군수(金山郡守)로 나갔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갔으며, 시와 글씨에 뛰어나 한호(韓濩)에게 서예를 가르침.
1517~1591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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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迂叟)@최덕지 - 최덕지(崔德之)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ㆍ문신.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의(參議) 최담(崔霮)의 아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음.
1384~14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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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龍溪)@민덕봉 - 민덕봉(閔德鳳)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의서 습독관(醫書習讀官)을 지낸 민우필(閔友弼)의 아들. 1573년(선조 6) 명(明) 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하여 나갔다가 객사(客舍)에서 죽음.
1514~157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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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란(乙卯倭亂) - 을묘왜변(乙卯倭變)
조선 명종(明宗) 때 왜구(倭寇)가 전라남도 영암(靈岩)ㆍ강진(康津)ㆍ진도(珍島) 일대에 침입한 사건. 비변사(備邊司)가 상설기관으로서 위치를 굳히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됨.
15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진도ㅣ전라도>영암ㅣ전라도>강진 , 사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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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소(應韶) - 민덕봉(閔德鳳)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의서 습독관(醫書習讀官)을 지낸 민우필(閔友弼)의 아들. 1573년(선조 6) 명(明) 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하여 나갔다가 객사(客舍)에서 죽음.
1514~157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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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양(存養) - 최덕지(崔德之)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ㆍ문신.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의(參議) 최담(崔霮)의 아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음.
1384~14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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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양당(存養堂) - 최덕지(崔德之)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ㆍ문신.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의(參議) 최담(崔霮)의 아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음.
1384~14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영암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