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751건)
표제어(1,47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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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처순(安處順)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안기(安璣)의 아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이행(李荇)과 함께 연루되었으나 화를 면함. 성균관 학관(成均館學官)ㆍ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 등을 지냄.
1492~1534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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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우(梁慶遇)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양대박(梁大樸)의 아들로, 부친을 따라 종군함. 1597년(선조 30)에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교리(校理)ㆍ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 등을 지냄.
156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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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梁灌)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무신. 덕천 군수(德川郡守) 등을 거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고, 근면하고 청렴하여 청백리에 녹선됨.
1437~150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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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주(梁九疇)
조선 전기의 문신.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을 지낸 양성지(梁誠之)의 아버지. 청풍 군사(淸風郡事)를 지냈으며,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에 추증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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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박(梁大樸)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남원(南原).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아들 양경우(梁慶遇)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담양(潭陽)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高敬命)을 맹주로 추대한 뒤 종사관(從事官)으로 활동함.
1544~1592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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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부(梁德符)
조선 세종(世宗) 때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정언(正言) 성자량(成自諒)의 사위이며, 양여창(梁汝昌)의 아버지로, 별시위(別侍衛)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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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楊墩)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인. 1498년(연산군 4)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함.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사표(師表)가 됨.
1461~1512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임실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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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재(梁棟材)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낸 양준(梁遵)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大提學)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제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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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용(梁曼容)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양산축(梁山軸)의 아들이며, 강항(姜沆)ㆍ박동열(朴東說)의 문인.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고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책록됨.
1598~1651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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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원(梁泗源)
조선 전기의 문신. 양산보(梁山甫)의 부친. 본관은 제주(濟州). 은덕(隱德)이 있어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음.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창평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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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형(楊士衡)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노진(盧禛)ㆍ유희춘(柳希春)의 문인으로, 영광 군수(靈光郡守) 등을 지냄. 임진왜란 때 군량을 조달하고 윤두수(尹斗壽)를 보좌하였으며 죽은 뒤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추록됨.
1547~159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순창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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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룡(梁山龍)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幼學)ㆍ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제민(宋濟民)ㆍ양산숙(梁山璹)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함.
1552~?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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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립(梁山立)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양응기(梁應箕)의 장자(長子). 효천(孝薦)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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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보(梁山甫)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1519년(중종 14)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가 실각하자 귀향하여 소쇄원(瀟灑園)을 짓고 한평생 은거함.
1503~155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담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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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수(梁山秀)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양응기(梁應箕)의 아들.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냈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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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숙(梁山璹)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경전공부에 전심하여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병학(兵學)에 통달함.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다가 진주성(晉州城)에서 순절함.
1561~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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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욱(梁山旭)
조선 선조(宣祖) 때의 의사(義士)ㆍ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언림(彦霖) 양응필(梁應畢)의 아들. 임진왜란 때에 의거하였으며, 예빈시 봉사(禮賓寺奉事)을 지냈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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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준(梁山浚)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 양응기(梁應箕)의 아들로, 예빈시 봉사(禮賓寺奉事)를 지냈으나 일찍 죽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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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중(梁山重)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낸 양응태(梁應台)의 아들.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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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축(梁山軸)
조선 선조(宣祖) 때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넷째 아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진주 남쪽 삼향포(三鄕浦)에서 왜적을 만나 일가가 모두 순절함.
1571~159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기타인명>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