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77건)
유의어(4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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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조(德操) - 사마휘(司馬徽)
중국 후한(後漢)의 은자. 유현덕(劉玄德)이 사마휘에게 인재를 추천하여 주기를 청하였는데, 제갈량(諸葛亮)ㆍ방통(龐統)을 추천함. 제갈량(諸葛亮)ㆍ서서(徐庶) 등과 종유하며 은거생활을 하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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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조(德祖) - 양수(楊修)
중국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 조조(曹操)의 모사. 태위(太尉) 양표(楊彪)의 아들로, 박학하고 견식이 넓었으나, 조조가 “계륵”이라 한 말뜻을 미리 알고 짐을 꾸렸다가 사형됨.
175~21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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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공(君公) - 두시(杜詩)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문신. 횡포한 장군 소광(蕭光)을 격살(格殺)하고, 역적 양이(楊異) 등을 주벌함. 크게 선정을 베풂.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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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君文) - 가복(賈復)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장군. 등우(鄧禹)ㆍ경감(耿弇) 등과 함께 광무제를 보좌하여 후한을 건립하는 데 공훈을 세움. 도호장군(都護將軍)이 되고 교동후(膠東侯)에 봉해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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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방(君房)@후패 - 후패(侯覇)
중국 신(新)~후한(後漢) 때의 문신. 신 나라 때에 회평 대윤(淮平大尹)을 지내고 후한 초에 상서령(尙書令)을 지냄. 옛 제도에 정통하였고,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정리하였음.
?~37 중국>후한ㅣ중국>신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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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君嗣) - 유덕승(劉德升)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서예가. 종요(鍾繇)와 호소(胡昭)의 스승으로, 행서체(行書体)의 대가로 일컬어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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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君章) - 질운(郅惲)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문신. 광무제가 황후를 폐출하고자 하여 의견을 물었을 때 제대로 직간하지 않았다 하여 주자(朱子)로부터 비난을 받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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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마씨(貴人馬氏) - 명덕마황후(明德馬皇后)
중국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황후. 외척들이 정사(政事)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검소하게 생활한 것으로 유명함.
?~7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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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황(德皇) - 효덕황(孝德皇)
중국 후한(後漢) 장제(章帝)의 장남. 황태자가 되었다가 훼참(毁讒)으로 폐위되어 청하왕(淸河王)에 봉해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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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屠蟠) - 신도반(申屠蟠)
중국 후한(後漢) 말의 학자ㆍ은자. 당고(黨錮)의 화를 피해 산 속에 들어가 살면서 대장군 하진(何進)과 동탁(董卓) 등의 초빙을 물리치고 절조(節操)를 지키며 여생을 마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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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정(東家鄭) - 정현(鄭玄)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장공조(張恭祖)ㆍ마융(馬融) 등을 사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연구와 교육에 진력함. 경학(經學)을 집대성하고 고대의 역사문헌을 정리하는 데 크게 공헌함.
127~200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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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桐江)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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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왕(樂安王) - 유홍(劉鴻)
중국 후한(後漢)의 제9대 질제(質帝)의 아버지. 유총(劉寵)의 아들로, 아버지의 관작을 이어 낙안왕(樂安王)이 되었다가, 아들이 황제가 되자 발해왕(渤海王)으로 봉해짐.
?~145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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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南陽)@광무제 - 광무제(光武帝)
중국 후한(後漢)의 초대 황제. 재위 25~57. 신(新) 나라 왕망(王莽)의 군대를 격파하고 후한을 세움. 왕망의 가혹하였던 정치를 폐지하고 전조(田租)를 인하하는 등 통일국가의 기초를 다졌으며, 후한의 특색이 되는 예교주의(禮敎主義)의 기초를 다짐.
B.C.6~A.D.57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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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고사(南州高士) - 서치(徐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고사(高士). 예장 태수(豫章太守) 진번(陳蕃)이 빈객을 접대하는 일이 없었으나, 오직 그를 위해 하나의 의자를 마련하여 그가 오면 내어놓고 떠난 후에 다시 걸어두었다는 고사로 유명함.
97~16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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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후(膠東侯) - 가복(賈復)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장군. 등우(鄧禹)ㆍ경감(耿弇) 등과 함께 광무제를 보좌하여 후한을 건립하는 데 공훈을 세움. 도호장군(都護將軍)이 되고 교동후(膠東侯)에 봉해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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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향(仇香) - 구람(仇覽)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 백성들을 형벌이 아닌 덕(德)으로 다스려 교화시킨 일로 유명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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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湛)@후한 - 장담(張湛)@후한
중국 후한(後漢) 때의 사람. 사람됨이 예를 좋아하여 행동거지에 법도가 있었고, 광무제(光武帝) 때 조정에 들어가 황제가 나태한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간하였으며, 항상 백마를 타고 다녔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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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金華)@황초평 - 황초평(黃初平)
중국 후한(後漢)~남북조시대 진(晉) 나라 때의 신선. 15세 때 양(羊)을 먹이러 나갔다가 도사(道士)를 만나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들어가 40년간 도를 닦고 신선이 되었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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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객(金華客) - 황초평(黃初平)
중국 후한(後漢)~남북조시대 진(晉) 나라 때의 신선. 15세 때 양(羊)을 먹이러 나갔다가 도사(道士)를 만나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들어가 40년간 도를 닦고 신선이 되었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