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776건)
유의어(518건)
-
복수(伏壽) - 헌제복황후(獻帝伏皇后)
중국 후한(後漢) 최후의 황제인 헌제(獻帝)의 비. 조조(曹操)의 세력이 커져 황제를 업신여기자 아버지 복완(伏完)과 모의하여 조조를 죽이려다 일이 탄로나 두 아들과 함께 몰살당함.
?~214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
복파(伏波) - 마원(馬援)
중국 후한(後漢) 때의 장군. 광무제(光武帝)의 신하가 되어 교지(交趾)와 흉노(匈奴) 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움.
B.C.14~A.D.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
복후(伏后) - 헌제복황후(獻帝伏皇后)
중국 후한(後漢) 최후의 황제인 헌제(獻帝)의 비. 조조(曹操)의 세력이 커져 황제를 업신여기자 아버지 복완(伏完)과 모의하여 조조를 죽이려다 일이 탄로나 두 아들과 함께 몰살당함.
?~214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
본초(本初) - 원소(袁紹)
중국 후한(後漢) 영제(靈帝)~헌제(獻帝) 때의 무신. 영제가 죽자 환관들을 일소하려다가 실패한 뒤 동탁(董卓)을 낙양(洛陽)에서 몰아내고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으나, 조조(曹操)와 결전을 벌였다가 대패하고 병사함.
?~20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
부인동씨(夫人董氏) - 효인황후(孝仁皇后)
중국 후한(後漢)의 추존(追尊) 왕비. 영제(靈帝)의 어머니이고 효인황(孝仁皇)의 아내로, 영제 즉위 후 진원귀인(眞元貴人)으로 추존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
부인하씨(夫人夏氏) - 효원황후(孝元皇后)
중국 후한(後漢)의 추존(追尊) 왕비. 영제(靈帝)의 조모(祖母)이며 효원황(孝元皇)의 아내로, 영제가 즉위하자 효원후(孝元后)로 추존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
부춘(富春)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
부춘수(富春叟)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
무열황제(武烈皇帝) - 손견(孫堅)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무장(武將). 손책(孫策)ㆍ손권(孫權: 오(吳) 대제(大帝))의 아버지. 지방의 호족(豪族) 출신으로, 황건(黃巾)의 난(亂)과 동탁(董卓) 토벌에 공을 세웠으나, 유표(劉表)와의 전투에서 황조(黃祖)에게 사살됨.
156~19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
문강(文强) - 황향(黃香)
중국 후한(後漢) 장제(章帝)~화제(和帝) 때의 문신. 많은 전적(典籍)을 읽었고 문장을 잘 지었으므로 사람들이 ‘천하무쌍 강하황동(天下無雙江夏黃童)’이라 일컬었으며, 뒤에는 황동이 사관(史官)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문거(文擧) - 공융(孔融)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ㆍ학자.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헌제(獻帝) 때 북해(北海)의 재상(宰相)이 되어 학교를 세우고 유학(儒學)을 가르침. 한조(漢朝)의 세력 회복에 힘썼으나 조조(曹操) 등의 미움을 받아 일족과 함께 피살됨.
153~20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문계(文季) - 주휘(朱暉)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임회 태수(臨淮太守)로 있으면서 정사를 잘하여 그곳 관리와 백성들이 존경하고 사랑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문공(文恭)@호광 - 호광(胡廣)
중국 후한(後漢) 안제(安帝)~영제(靈帝) 때의 문신. 태부(太傅) 등을 지내고, 여섯 명의 황제를 보좌한 나라의 원로(元老)로서 모든 정무(政務)를 잘 처리하여 ‘중용(中庸)의 재상’으로 일컬어짐.
91~17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문범선생(文范先生) - 진식(陳寔)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 태구 현령(太丘縣令)을 지냄. 아들 진기(陳紀)ㆍ진심(陳諶)과 함께 세 군자란 명성이 있으며, 양상군자(梁上君子)란 고사로도 유명함.
104~187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문선(文先) - 양표(楊彪)
중국 후한(後漢) 말의 문신. 양수(楊修)의 아버지로, 사도(司徒)ㆍ태위(太尉) 등을 지냄. 조조(曹操)의 미움을 받아 살해당할 뻔 했으나 공융(孔融)의 항의로 목숨을 건졌으며, 한 황실이 종말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병을 핑계로 은퇴함.
142~225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문숙(文叔)@광무제 - 광무제(光武帝)
중국 후한(後漢)의 초대 황제. 재위 25~57. 신(新) 나라 왕망(王莽)의 군대를 격파하고 후한을 세움. 왕망의 가혹하였던 정치를 폐지하고 전조(田租)를 인하하는 등 통일국가의 기초를 다졌으며, 후한의 특색이 되는 예교주의(禮敎主義)의 기초를 다짐.
B.C.6~A.D.57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
문약(文若) - 순욱(荀彧)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순가팔룡(荀家八龍) 중 한 명인 순곤(荀緄)의 아들로 조조(曹操)를 도와 패업을 이룩하였으나, 위왕(魏王)이 되려는 조조의 속셈을 반대하다가 미움을 사 자결함.
163~21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문연(文淵) - 마원(馬援)
중국 후한(後漢) 때의 장군. 광무제(光武帝)의 신하가 되어 교지(交趾)와 흉노(匈奴) 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움.
B.C.14~A.D.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
문요(文饒)@유관 - 유관(劉寬)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문신. 태위(太尉) 등을 역임하였으며, 성품이 온순하고 인자하여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때 아전이나 백성들이 과실을 범하면 아프지 않은 부들 채찍으로 벌을 주었다고 함.
120~185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선광(宣光) - 주거(周擧)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ㆍ학자. 여남(汝南) 사람으로, 주방(周防)의 아들. 박학다식하고 오경(五經)에 능통하여 유학자들의 종사(宗師)가 됨. 《후한서(後漢書)》에 열전(列傳)이 있음.
?~1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