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19건)
표제어(8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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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楊惲)
중국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의 문신. 사마천(司馬遷)의 외손으로, 곽씨(霍氏)의 모반(謀反)을 고변하여 열경(列卿)에 오르고 평통후(平通侯)에 봉해짐.
?~B.C.54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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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건(石建)
중국 한(漢) 경제(景帝)~무제(武帝) 때의 문신.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의 맏아들로, 낭중령(郞中令) 등을 지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석분이 죽은 뒤 애통해하다가 1년여 만에 죽음.
?~B.C.123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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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疏廣)
중국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의 문신. 황태자의 태부(太傅)로 있으면서 관직과 명성이 점차 높아지자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고 하며, 소부(少傅)로 있던 조카 소수(疏受)와 함께 사임하고 낙향함.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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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지(蕭望之)
중국 전한(前漢) 선제(宣帝)~원제(元帝) 때의 문신ㆍ학자. 홍공(弘恭)ㆍ석현(石顯) 등 환관의 전횡을 막아 제도를 개혁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의 모함에 빠져 자살함.
B.C.106~B.C.47 중국>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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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흠(劉歆)
중국 전한(前漢)의 문신ㆍ학자. 유향(劉向)의 아들로, 황실의 도서를 교감하고 관리하였으며, 중국 최초의 도서목록인 《칠략(七略)》를 편찬함. 뒤에 왕망(王莽)이 국사(國師)로 삼았으나 그를 모살하려다 실패하여 자살함.
B.C.53?~A.D.23 중국>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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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안(嚴安)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문신. 낭중(郞中)ㆍ기마령(騎馬令) 등을 지내고, 종군(終軍)과 함께 문학(文學)으로 뽑혀서 조정에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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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조(嚴助)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문신. 동방삭(東方朔)ㆍ사마상여(司馬相如)ㆍ오구수왕(吾丘壽王) 등과 함께 총애를 받았으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모반사건 때 유안과 사이가 좋았다는 이유로 사형당함. 주매신(朱買臣)을 추천하여 관직에 오르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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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현(伶玄)
중국 전한(前漢)의 문신ㆍ문인. 회남상(淮南相) 등을 지냈으며, 첩인 번통덕(樊通德)에게 성제(成帝)의 황후인 비연(飛燕)의 자매(姉妹)에 대한 고사를 듣고 《비연외전(飛燕外傳)》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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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부궁(息夫躬)
중국 전한(前漢) 애제(哀帝) 때의 문신. 제후 유운(劉雲)을 무고(誣告)하여 자살하게 만들고, 애제에게 거짓 진언을 하다가 왕가(王嘉)에 의해 저지 당함.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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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기(審食其)
중국 한(漢) 나라 혜제(惠帝) 때의 문신. 여후(呂后)가 정권을 장악하자 총애를 받아 당시 정권을 독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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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王嘉)
중국 한(漢) 나라 때의 문신. 전한(前漢) 칠상(七相) 중의 한 명이며, 애제(哀帝) 때 변사(辯士)인 식부궁(息夫躬)의 계략을 저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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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길(王吉)
중국 전한(前漢) 선제(宣帝)~원제(元帝) 때의 문신.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냄. 왕길이 공우(貢禹)와 친하였는데, 왕길이 인사를 맡은 자리에 앉자 공우가 갓의 먼지를 털고는 자신을 천거해 주기를 기다렸다는 고사가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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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王陵)
중국 한(漢) 나라 고조(高祖) 때의 개국공신. 혜제(惠帝) 사후(死後) 여태후(呂太后)가 여씨(呂氏)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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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순(王舜)
중국 전한(前漢)~신(新) 때의 문신. 왕망(王莽)의 심복으로, 유흠(劉歆)ㆍ견풍(甄豊)과 함께 왕망의 왕위 찬탈을 도움.
중국>신ㅣ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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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존(王尊)
중국 전한(前漢)의 충신.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사천성(四川省) 공래산(邛郲山)의 구절판(九折阪)을 넘을 때 충신으로서 길을 지체할 수 없다고 마부를 재촉했던 고사가 전함. 주로 외직에 종사하며 백성에게 선정을 베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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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于公)
중국 전한(前漢) 때의 문신. 옥송(獄訟)을 공평히 처리하면서 그 음덕으로 가문을 크게 일으킬 자손이 나올 것을 예측하고 집 대문을 크게 만들었는데, 아들 우정국(于定國)이 승상(丞相), 손자 우영(于永)이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는 고사가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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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鼂錯)
중국 전한(前漢) 문제(文帝)~경제(景帝) 때의 문신. 신불해(申不害). 공손앙(公孫鞅) 등에게 형명학(形名學)을 배움. 법가(法家)의 영향을 받아 태상장고(太常掌故)에 임용되었고,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으로 참형됨.
?~B.C.154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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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참(曹參)
중국 전한(前漢)의 문신. 진(秦) 나라의 옥리(獄吏) 출신으로 한(漢) 나라 통일에 공을 세워 평양후(平陽侯)로 책봉되고, 혜제(惠帝) 때는 상국(相國)에 오름.
?~B.C.190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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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終軍)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문신. 문학과 언변이 매우 뛰어나 약관(弱冠)의 나이로 간대부(諫大夫)에 발탁됨. 남월왕(南越王)에게 한(漢)의 내속(內屬)이 될 것을 설득하여 관철시킴으로써 황제로부터 큰 총애을 받음.
?~B.C.112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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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매신(朱買臣)
중국 전한(前漢) 무제(漢武帝) 때의 문신. 엄조(嚴助)의 추천으로 무제에게 《춘추(春秋)》를 강설하게 되어 관직에 오름. 회계 태수(會稽太守)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 헤어진 아내와 그의 남편을 도와주었는데 옛 아내가 부끄러워 자살했다고 함.
?~B.C.109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