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77건)
표제어(20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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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숙(荀淑)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환제(桓帝) 때의 문신. 순제 사망 후 전횡을 휘두른 외척 양기(梁冀)를 비난하다 지방으로 좌천되었고, 낭릉후(朗陵侯)의 재상이 되었을 때 일을 명쾌하게 처리하여 신군(神君)이라는 칭호를 얻음.
83~1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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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씨팔룡(荀氏八龍)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인 순숙(荀淑)의 여덟 명의 아들, 순검(荀儉)ㆍ순곤(荀緄)ㆍ순정(荀靖)ㆍ순도(荀燾)ㆍ순왕(荀汪)ㆍ순상(荀爽)ㆍ순숙(荀肅)ㆍ순전(荀專)이 모두 훌륭했기 때문에 함께 부르는 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집단>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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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荀彧)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순가팔룡(荀家八龍) 중 한 명인 순곤(荀緄)의 아들로 조조(曹操)를 도와 패업을 이룩하였으나, 위왕(魏王)이 되려는 조조의 속셈을 반대하다가 미움을 사 자결함.
163~21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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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제(順帝)@후한
중국 후한(後漢)의 제7대 황제. 재위 125~144. 재위기간에 외척인 양기(梁冀) 등으로 인해 내정이 문란하고, 천재지변의 속출로 사회가 혼란해짐.
?~144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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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安帝)@후한
중국 후한(後漢)의 제6대 황제. 재위 106~125. 청하왕(淸河王) 유경(劉慶)의 아들로, 상제(殤帝)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으나 등태후(鄧太后)의 섭정으로 실권을 행사하지 못함.
94~125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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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청(安淸)
중국 후한(後漢)의 역경승(譯經僧)ㆍ불교학자. 안식국(安息國)의 왕자로, 출가하여 아비담(阿毘曇) 연구와 선정(禪定)에 힘씀. 중국에서 불경을 한역함.
?~170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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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梁冀)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의 무신. 양황후(梁皇后)의 오빠로, 권력을 남용하여 절제(節帝)를 옹립하고 독살하였으나 환제(桓帝) 때에 실각하여 자살함.
?~15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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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楊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 양진(楊震)의 아들로, 역학(易學)과 《서전(書傳)》에 밝고, 매우 청렴하여 술과 여색과 돈에 미혹되지 않았다 하여 ‘삼불혹(三不惑)’으로 일컬어졌으며, 태위(太尉) 등을 지냄.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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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梁商)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의 무신. 순제의 국구(國舅)이며, 양기(梁冀)의 아버지. 대장군(大將軍)을 지내고, 맏딸과 둘째딸이 순제의 황후(皇后)와 귀인(貴人)이 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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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楊修)
중국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 조조(曹操)의 모사. 태위(太尉) 양표(楊彪)의 아들로, 박학하고 견식이 넓었으나, 조조가 “계륵”이라 한 말뜻을 미리 알고 짐을 꾸렸다가 사형됨.
175~21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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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楊震)
중국 후한(後漢) 안제(安帝) 때의 문신. 아들 양병(楊秉), 손자 양사(楊賜), 증손자 양표(楊彪) 등 4세(世)에 걸쳐 태위(太尉)가 배출된 집안으로 유명함.
54~124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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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徐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고사(高士). 예장 태수(豫章太守) 진번(陳蕃)이 빈객을 접대하는 일이 없었으나, 오직 그를 위해 하나의 의자를 마련하여 그가 오면 내어놓고 떠난 후에 다시 걸어두었다는 고사로 유명함.
97~16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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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한(薛漢)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시경(詩經)》을 깊이 연구하여 장안(長安)에서 강학했는데, 경백(敬伯)ㆍ두무(杜橅) 등이 그에게서 배움.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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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劉晨)
중국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의 서생(書生). 전설에 완조(阮肇)와 함께 천태산(天台山)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선녀를 만나 혼인한 후 반년 만에 고향이 그리워 돌아와 보니, 자손이 이미 7대까지 내려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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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劉英)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아들. 명제(明帝)의 동생으로, 황로(黃老)와 불교(佛敎)를 숭상했음. 명제(明帝) 때 모반죄로 처형당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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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劉楨)
중국 후한(後漢)~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문장가. 건안칠자(建安七子) 중의 한 사람.
?~217 중국>삼국시대ㅣ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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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劉琮)
중국 후한(後漢) 말의 군웅(群雄).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둘째 아들로, 채모(蔡瑁)와 장윤(張允) 등의 도움을 받아 유표의 군웅 지위를 계승하였으나 적벽(赤壁) 싸움에 앞서 조조(曹操)에게 항복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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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劉蒼)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아들. 박학다재(博學多才)하여 공경(公卿)들과 주요 제도를 의정(議定)하였으며, 명제(明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음.
?~83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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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劉表)
중국 후한(後漢) 때의 군웅(群雄). 노공왕(魯恭王) 유여(劉餘)의 후손으로, 관도(官渡)의 싸움 때 원소(袁紹)와 조조(曹操)의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으며, 덕망이 높아 유비(劉備) 등이 그에게 의탁함.
142~20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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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劉荊)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아들. 재능은 있으나 성질이 음험하여 명제(明帝) 때 동해왕(東海王)을 무고하고, 역모 사건을 일으켰다가 후에 자살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