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77건)
표제어(20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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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충(王充)
중국 후한(後漢) 때의 학자. 반표(班彪)의 제자이며, 틀에 짜인 유교 사상을 철저히 거부하고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추구한 사상적 전환기의 선구자로, 당시의 전통적 정치와 학문을 비판하며 《논형(論衡)》을 저술함.
27~97?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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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환(王渙)
중국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의 문신. 낙양령(洛陽令) 재임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얻었고, 구람(仇覽)의 덕을 듣고 천거한 일이 있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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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술(龍述)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 마원(馬援)이 조카들에게 용백고(龍伯高)를 본받으라고 할 정도로 청렴ㆍ근검했음. 광무제(光武帝)가 마원의 글을 보고 용백고를 영릉 태수(零陵太守)로 삼았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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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숙(曹世叔)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ㆍ학자. 반고(班固)의 여동생인 반소(班昭)의 남편으로 요절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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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습(趙襲)
중국 후한(後漢)의 서예가. 명필(名筆) 나휘(羅暉)와 함께 서법(書法)의 명가(名家)로 불림.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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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趙典)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 행실이 돈독하고 학식이 뛰어났으며 황제에게 직언(直言)을 잘 하기로 유명했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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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절(曹節)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환관. 환관 왕보(王甫)와 함께 진번(陳蕃)ㆍ두무(竇武)ㆍ이응(李膺) 등을 살해하고 청류세력을 탄압하여 제2차 당고(黨錮)의 화(禍)를 일으킴.
?~181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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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권(鐘離權)
중국 후한(後漢)의 도사. 도교 팔선(八仙) 중 한 사람으로, 원래는 장군이었으나 토번(吐藩)을 정벌하다가 실패하고 도망쳐 도사가 되었다고 함. 일설에는 당(唐) 나라의 도사로, 여암(呂巖)과 동시대 인물이라고도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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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자(左慈)
중국 후한(後漢) 때의 도술가(道術家). 도술을 배워 육갑(六甲)ㆍ신술(神術)에 정통함. 조조(曹操)가 농어(鱸魚)가 먹고 싶다고 하자 대야 물에서 송강(松江)의 농어를 낚아 올렸는데 이를 두려워한 조조가 죽이려 하자 양이 되어 양의 무리 속에 들어가서 잡지 못했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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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周擧)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ㆍ학자. 여남(汝南) 사람으로, 주방(周防)의 아들. 박학다식하고 오경(五經)에 능통하여 유학자들의 종사(宗師)가 됨. 《후한서(後漢書)》에 열전(列傳)이 있음.
?~1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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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朱穆)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효렴과(孝廉科)에 천거되었으며,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되자 탐관오리들이 두려워하여 인끈을 풀고 떠났으며 그가 경내에 도착하자 자살하는 자까지도 있었다고 함. 《후한서(後漢書)》에 〈주목열전(朱穆列傳)〉이 있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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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周澤)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태상(太常)의 관원이 되어서 종묘(宗廟)를 지켰는데 병이 들어서 재궁(齋宮)에 누워 있을 때 그의 처가 몰래 가서 엿보자 금법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아내를 조옥(詔獄)에 내려 보냈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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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휘(朱暉)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임회 태수(臨淮太守)로 있으면서 정사를 잘하여 그곳 관리와 백성들이 존경하고 사랑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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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통(仲長統)
중국 후한(後漢) 때의 학자. 학문을 좋아하고 문사(文辭)에 능하며 직언(直言)을 즐겨 비판정신이 투철하였으며, 저서로 《창언(昌言)》이 있으나 전하지는 않음.
179~220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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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陳紀)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헌제(獻帝) 때의 학자. 동생 진심(陳諶)과 더불어 높은 덕망을 지님. 아버지 진식(陳寔)으로부터 난형난제(難兄難弟)라 일컬어짐.
129~19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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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등(陳登)
중국 후한(後漢)~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문신. 지모가 출중하고 해박한 지식을 지녔으며 광릉 태수(廣陵太守)와 동성 태수(東城太守)를 지냄. 자신을 크게 자부하여 손님은 아래에 있는 침대에서 자게 하고 자신은 위에 있는 큰 침대에 누웠다 함.
중국>삼국시대ㅣ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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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림(陳琳)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 원소(袁紹)의 막하에 들어가 그를 위해 조조(曹操)의 죄상을 문책하는 격문을 지었는데, 원소가 패하여 조조에게 사로잡혔으나 조조는 그 재주가 아까워 죄를 주지 않고 기실(記室)을 삼았다 함.
?~217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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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번(陳蕃)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 태위(太尉)ㆍ태부(太傅) 등을 지냈으나, 정권을 독점한 환관(宦官)들을 공박하다가 도리어 당인(黨人)이라고 지목되어 종신토록 금고(禁錮)됨.
?~16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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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조(張恭祖)
중국 후한(後漢) 때의 학자. 정현(鄭玄)에게 《고문상서(古文尙書)》ㆍ《주례(周禮)》ㆍ《좌씨춘추(左氏春秋)》등을 가르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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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張湛)@후한
중국 후한(後漢) 때의 사람. 사람됨이 예를 좋아하여 행동거지에 법도가 있었고, 광무제(光武帝) 때 조정에 들어가 황제가 나태한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간하였으며, 항상 백마를 타고 다녔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