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90건)
표제어(6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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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魯丕)
중국 후한(後漢) 장제(章帝)~화제(和帝) 때의 문신․학자. 노공(魯恭)의 아우로, 좌중랑장(左中郞將) 등을 지냈으며, 오경(五經)에 정통하고, 《노시(魯詩)》ㆍ《상서(尙書)》를 가르쳐 명유(名儒)로 일컬어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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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袁安)
중국 후한(後漢) 명제(明帝)~화제(和帝) 때의 문신. 초왕 영(楚王英)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는 자가 속출할 때, 초군 태수(楚郡太守)로 부임하여 죄안을 다시 심사하여 풀어준 사람이 4백여 인에 이르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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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劉寬)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문신. 태위(太尉) 등을 역임하였으며, 성품이 온순하고 인자하여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때 아전이나 백성들이 과실을 범하면 아프지 않은 부들 채찍으로 벌을 주었다고 함.
120~185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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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상(荀爽)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12세에 《춘추(春秋)》와 《논어(論語)》에 정통한 영재로, 순가팔룡(荀家八龍) 중에서도 가장 명성이 높았음.
128~190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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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숙(荀淑)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환제(桓帝) 때의 문신. 순제 사망 후 전횡을 휘두른 외척 양기(梁冀)를 비난하다 지방으로 좌천되었고, 낭릉후(朗陵侯)의 재상이 되었을 때 일을 명쾌하게 처리하여 신군(神君)이라는 칭호를 얻음.
83~1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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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荀彧)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순가팔룡(荀家八龍) 중 한 명인 순곤(荀緄)의 아들로 조조(曹操)를 도와 패업을 이룩하였으나, 위왕(魏王)이 되려는 조조의 속셈을 반대하다가 미움을 사 자결함.
163~21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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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楊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 양진(楊震)의 아들로, 역학(易學)과 《서전(書傳)》에 밝고, 매우 청렴하여 술과 여색과 돈에 미혹되지 않았다 하여 ‘삼불혹(三不惑)’으로 일컬어졌으며, 태위(太尉) 등을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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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楊修)
중국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 조조(曹操)의 모사. 태위(太尉) 양표(楊彪)의 아들로, 박학하고 견식이 넓었으나, 조조가 “계륵”이라 한 말뜻을 미리 알고 짐을 꾸렸다가 사형됨.
175~21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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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楊震)
중국 후한(後漢) 안제(安帝) 때의 문신. 아들 양병(楊秉), 손자 양사(楊賜), 증손자 양표(楊彪) 등 4세(世)에 걸쳐 태위(太尉)가 배출된 집안으로 유명함.
54~124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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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陸績)
중국 후한(後漢)~삼국시대 오(吳) 나라 때의 문신. 당(唐) 나라 육구몽(陸龜蒙)의 원조(遠祖). 《주역(周易)》을 주석한 9인의 연구가인 구가(九家)의 한 사람으로, 울림 태수(鬱林太守) 등을 지내고,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음.
중국>삼국시대ㅣ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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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표(楊彪)
중국 후한(後漢) 말의 문신. 양수(楊修)의 아버지로, 사도(司徒)ㆍ태위(太尉) 등을 지냄. 조조(曹操)의 미움을 받아 살해당할 뻔 했으나 공융(孔融)의 항의로 목숨을 건졌으며, 한 황실이 종말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병을 핑계로 은퇴함.
142~225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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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범(廉范)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촉군 태수(蜀郡太守)로서 불합리한 법령을 없애는 등 민생(民生) 위주의 정사를 펴서 백성들의 칭송을 받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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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형(禰衡)
중국 후한(後漢)~삼국시대(三國時代) 때의 문신. 공융(孔融)에게 비상한 재능을 인정받아 조조(曹操)에게 추천되었으나, 조조와 황조(黃祖)를 모욕하다 죽임을 당했음.
중국>삼국시대ㅣ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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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교(王喬)
중국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의 문신. 업현(鄴縣)의 수령을 역임하였으며, 신술(神術)이 있었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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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王陽)
중국 한(漢) 나라의 문신ㆍ효자.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고을을 순시하던 도중 공래현(邛崍縣)의 구절판(九折坂)이라는 험한 길을 지날 때, 부모가 물려준 몸으로 녹봉을 위하여 이런 험한 길을 갈 수 없다 하고는 돌아와 벼슬을 사직한 고사가 전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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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열(王烈)
중국 후한(後漢)~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 나라의 문신. 진식(陳寔)에게 사사한 후 그 의행(義行)으로 벼슬하여 송사(訟事)를 잘 판결하였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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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환(王渙)
중국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의 문신. 낙양령(洛陽令) 재임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얻었고, 구람(仇覽)의 덕을 듣고 천거한 일이 있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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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술(龍述)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 마원(馬援)이 조카들에게 용백고(龍伯高)를 본받으라고 할 정도로 청렴ㆍ근검했음. 광무제(光武帝)가 마원의 글을 보고 용백고를 영릉 태수(零陵太守)로 삼았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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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趙典)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 행실이 돈독하고 학식이 뛰어났으며 황제에게 직언(直言)을 잘 하기로 유명했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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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周擧)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ㆍ학자. 여남(汝南) 사람으로, 주방(周防)의 아들. 박학다식하고 오경(五經)에 능통하여 유학자들의 종사(宗師)가 됨. 《후한서(後漢書)》에 열전(列傳)이 있음.
?~1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