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776건)
표제어(2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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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劉京)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아들. 어머니는 광렬음황후(光烈陰皇后)로, 낭야왕(琅邪王)에 봉해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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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劉寬)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문신. 태위(太尉) 등을 역임하였으며, 성품이 온순하고 인자하여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때 아전이나 백성들이 과실을 범하면 아프지 않은 부들 채찍으로 벌을 주었다고 함.
120~185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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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승(劉德升)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서예가. 종요(鍾繇)와 호소(胡昭)의 스승으로, 행서체(行書体)의 대가로 일컬어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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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劉輔)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둘째 아들. 시호는 헌(獻). 《경씨역(京氏易)》ㆍ《효경(孝經)》ㆍ《논어(論語)》 및 《도참(圖讖)》을 해설하고, 《오경론(五經論)》을 지었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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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시(悲憤詩)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ㆍ열녀인 채염(蔡琰)이 쓴 시. 위중도(衛仲道)에게 시집갔다가 사별한 뒤 전쟁 때 흉노(匈奴)에게 납치되어 두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조조(曹操)가 데려와 동사(董祀)에게 시집보내자 절개 잃은 것을 상심하고 두 아들을 잊지 못하는 슬픔을 담음.
중국>후한 , 중국 , 문헌>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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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방(費長房)
중국 후한(後漢) 때의 도사. 여남인(汝南人)으로, 저자의 아전으로 있으면서 선인(仙人) 호공(壺公)을 사사(師事)하여 선도(仙道)를 터득하였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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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史^漢)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편찬한 기전체(紀傳體) 통사(通史)인 《사기(史記)》와,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기전체로 엮은 전한의 정사(正史)인 《한서(漢書)》를 함께 부르는 말.
중국>후한ㅣ중국>전한 , 중국 , 문헌>기타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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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휘(司馬徽)
중국 후한(後漢)의 은자. 유현덕(劉玄德)이 사마휘에게 인재를 추천하여 주기를 청하였는데, 제갈량(諸葛亮)ㆍ방통(龐統)을 추천함. 제갈량(諸葛亮)ㆍ서서(徐庶) 등과 종유하며 은거생활을 하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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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四知)
천지(天知)ㆍ신지(神知)ㆍ자지(子知)ㆍ아지(我知). 중국 후한(後漢)의 양진(楊震)이, 자신이 추천한 왕밀(王密)이 황금을 몰래 바치자,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안다.”고 하면서 물리친 데서 유래한 말로, 세상에는 비밀이 없음을 뜻함.
중국>후한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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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三顧草廬)
중국 후한(後漢) 말엽,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군사(軍師)로 초빙하기 위해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간 데서 나온 고사성어. 사람을 맞이함에 진심으로 예를 다함을 뜻함.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專)〉에 나옴.
중국>후한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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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이동설(三傳異同說)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ㆍ학자인 마융(馬融)의 저서. 춘추삼전(春秋三傳)을 분석하여 내용의 차이점을 해설한 책으로 추정되나, 일실(佚失)되어 현존하지 않음.
중국>후한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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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向長)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은자.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에 정통하였고, 늙어서는 북해(北海)의 금경(禽慶)과 함께 오악(五嶽)의 명산을 두루 유람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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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殤帝)
중국 후한(後漢)의 제5대 황제. 재위 105~106. 화제(和帝)가 죽자 태어난 지 백 일 만에 황제가 되었으나 두 살 때 죽음.
105~106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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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열제(昭烈帝)
중국 삼국시대 촉(蜀)의 제1대 황제. 재위 221~223. 후한(後漢)의 영제(靈帝) 때 황건적을 쳐서 공을 세우고, 후에 제갈량(諸葛亮)의 도움을 받아 오(吳) 나라의 손권(孫權)과 함께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에서 격파함.
161~223 중국>삼국시대ㅣ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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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孫堅)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무장(武將). 손책(孫策)ㆍ손권(孫權: 오(吳) 대제(大帝))의 아버지. 지방의 호족(豪族) 출신으로, 황건(黃巾)의 난(亂)과 동탁(董卓) 토벌에 공을 세웠으나, 유표(劉表)와의 전투에서 황조(黃祖)에게 사살됨.
156~19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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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책(孫策)
중국 후한(後漢) 말의 무신. 손견(孫堅)의 아들이며, 오(吳) 나라 대제(大帝: 손권(孫權))의 형. 원술(袁術)의 휘하에서 강남(江南)을 평정하였으나, 원술이 제위(帝位)에 오르려 하자 이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조조(曹操)와 손을 잡음.
175~200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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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상(荀爽)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12세에 《춘추(春秋)》와 《논어(論語)》에 정통한 영재로, 순가팔룡(荀家八龍) 중에서도 가장 명성이 높았음.
128~190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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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숙(荀淑)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환제(桓帝) 때의 문신. 순제 사망 후 전횡을 휘두른 외척 양기(梁冀)를 비난하다 지방으로 좌천되었고, 낭릉후(朗陵侯)의 재상이 되었을 때 일을 명쾌하게 처리하여 신군(神君)이라는 칭호를 얻음.
83~14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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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씨팔룡(荀氏八龍)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인 순숙(荀淑)의 여덟 명의 아들, 순검(荀儉)ㆍ순곤(荀緄)ㆍ순정(荀靖)ㆍ순도(荀燾)ㆍ순왕(荀汪)ㆍ순상(荀爽)ㆍ순숙(荀肅)ㆍ순전(荀專)이 모두 훌륭했기 때문에 함께 부르는 말.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집단>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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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荀彧)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 순가팔룡(荀家八龍) 중 한 명인 순곤(荀緄)의 아들로 조조(曹操)를 도와 패업을 이룩하였으나, 위왕(魏王)이 되려는 조조의 속셈을 반대하다가 미움을 사 자결함.
163~21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