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47건)
유의어(1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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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穆)@조목 - 조목(趙穆)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조대춘(趙大春)의 아들이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생원시에 입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經傳)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24~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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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芙蓉) - 조목(趙穆)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조대춘(趙大春)의 아들이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생원시에 입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經傳)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24~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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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로(芙蓉老) - 조목(趙穆)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조대춘(趙大春)의 아들이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생원시에 입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經傳)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24~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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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주인(芙蓉山主人) - 조목(趙穆)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조대춘(趙大春)의 아들이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생원시에 입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經傳)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24~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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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주(芙蓉主) - 조목(趙穆)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조대춘(趙大春)의 아들이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생원시에 입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經傳)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24~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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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애(北厓) - 김기(金圻)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했으며,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산장(山長)으로 《퇴계집(退溪集)》을 간행함.
1547~160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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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聞遠)@금난수 - 금난수(琴蘭秀)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봉화(奉化).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장예원 사평(掌隸院司評)ㆍ봉화 현감(奉化縣監) 등을 지내고, 귀향한 뒤에는 퇴계 학문을 강구함.
1530~160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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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文貞)@김령 - 김령(金坽)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성룡(柳成龍)의 막하로 자진하여 종군하였고,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장령(掌令)ㆍ집의(執義)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음.
1577~164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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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원(汾院) - 분강서원(汾江書院)
조선 숙종(肅宗) 때 경상도 예안(禮安)에 건립한 서원. 1613년(광해군 5년)에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향현사(鄕賢祠)를 1700년(숙종 26)에 서원으로 개편함.
170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유적>건물>서원,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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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士敬) - 조목(趙穆)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조대춘(趙大春)의 아들이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생원시에 입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經傳)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24~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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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재(惺惺齋) - 금난수(琴蘭秀)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봉화(奉化).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장예원 사평(掌隸院司評)ㆍ봉화 현감(奉化縣監) 등을 지내고, 귀향한 뒤에는 퇴계 학문을 강구함.
1530~160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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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익(聖翼) - 김성익(金聖翼)
조선 영조(英祖) 때의 유학. 본관은 광주(光州). 김시찬(金是瓚)의 아버지로, 1756년(영조 32)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173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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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惺齋)@금난수 - 금난수(琴蘭秀)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봉화(奉化).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장예원 사평(掌隸院司評)ㆍ봉화 현감(奉化縣監) 등을 지내고, 귀향한 뒤에는 퇴계 학문을 강구함.
1530~160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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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士元)@이종도 - 이종도(李宗道)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 본관은 진보(眞寶)로, 이황(李滉)의 종손(從孫)이며 문인.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장 김해(金垓)의 휘하(麾下)에서 의병부장(義兵副將)으로 활약함.
1535~160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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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守淵) - 이수연(李守淵)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예학(禮學)과 이기설(理氣說)에 밝고 시문(詩文)에도 능하였으며, 이황(李滉)의 학문을 정리하여 《퇴계선생속집(退溪先生續集)》을 편찬함.
1693~174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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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守盈) - 오수영(吳守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인ㆍ학자.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으로, 글씨를 잘 써 금보(琴輔)ㆍ이숙량(李叔樑) 등과 함께 ‘선성삼필(宣城三筆)’이라 불림.
1521~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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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겸중(吳謙仲) - 오수영(吳守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인ㆍ학자.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으로, 글씨를 잘 써 금보(琴輔)ㆍ이숙량(李叔樑) 등과 함께 ‘선성삼필(宣城三筆)’이라 불림.
1521~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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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施普) - 김택룡(金澤龍)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조목(趙穆)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이황(李滉)의 문하생들과 교유함.
1547~162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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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재(是齋) - 조목(趙穆)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조대춘(趙大春)의 아들이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생원시에 입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經傳)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24~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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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찬(是瓚) - 김시찬(金是瓚)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주(光州)로, 성균생원 김성익(金聖翼)의 아들. 학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천거되고 그 후 봉사(奉事)ㆍ직장(直長) 등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함.
1754~183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