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12건)
표제어(3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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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중(朴熙中)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문신. 본관은 진원(珍原). 구례 감무(求禮監務)를 지낸 박온(朴溫)의 아들로, 영암 군수(靈巖郡守)ㆍ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 등을 지냄. 문장과 서도에 탁월하여 《해동필원(海東筆苑)》에 이름이 오름.
1364~1446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진원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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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高雲)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화가. 본관은 장흥(長興). 고맹영(高孟英)의 아버지이며,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할아버지.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지낼 때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가 후에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추증됨. 호랑이 그림을 잘 그림.
149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장흥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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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金弘度)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ㆍ서화가.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로(金魯)의 아들.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 때 윤원형(尹元衡)에 의해 갑산(甲山)으로 유배되었다가 죽음.
1524~155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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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姜澂)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진주(晉州). 글씨에 능하여 중종(中宗)의 총애를 받음.
1466~153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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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姜漢)
조선 성종(成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진주(晉州). 학행과 뛰어나고 필법(筆法)이 정묘했으며,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교유함. 문하(門下)에서 정옥견(鄭玉堅)ㆍ권오복(權五福)ㆍ정사룡(鄭士龍) 등이 배출되었음.
145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산음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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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權鑄)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의 손자이며 현복군(玄福君) 권렴(權廉)의 아들. 지신사(知申事)ㆍ밀직 제학(密直提學) 등을 지냄.
?~1394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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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琴輔)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ㆍ서화가. 본관은 봉화(奉化)로, 이황(李滉)의 문인. 글씨에 뛰어나 이숙량(李叔樑)ㆍ오수영(吳守盈)과 더불어 선성삼필(宣城三筆)이라 불렸으며, 퇴계묘비(退溪墓碑)ㆍ도산신판(陶山神版) 등을 씀.
1521~158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봉화ㅣ경상도>예안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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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金絿)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글씨에 뛰어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ㆍ양사언(楊士彦)ㆍ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힘.
1488~1534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예산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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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金祺)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문인화가. 본관은 연안(延安).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김안로(金安老)의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을 지냄.
150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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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로(金魯)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안동(安東). 대사헌을 지낸 김희수(金希壽)의 아들로 부자가 모두 명필로 유명하였으며, 그의 필적으로 글씨를 새겨 간행한 《이가서법(二家書法)》이 있음.
1498~154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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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朴耕)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서예가. 정붕(鄭鵬)ㆍ박영(朴英)의 문인으로 교수청(校讐廳)의 사자생(寫字生)으로 있었는데, 유자광(柳子光)ㆍ박원종(朴元宗) 등 왕의 측근을 제거하려 한다는 밀고로 인해 참형(斬刑)에 처해짐.
?~150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나주 , 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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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량(朴公亮)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고령(高靈). 갑자사화 때 사형된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박은(朴誾)의 아들. 글씨에 능하여 많은 금석문(金石文)을 남겼고, 《중종실록(中宗實錄)》과 《인종실록(仁宗實錄)》편찬에도 참여함.
1494~155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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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朴用賢)
조선 전기의 화가. 본관은 밀양(密陽). 구암(龜巖) 이정(李楨)이 지은 제시(題詩) 〈제화병(題畫屛)〉이 《구암집(龜巖集)》에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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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安堅)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화가. 본관은 지곡(池谷). 안평대군(安平大君)의 후원을 받았으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림. 산수화에 뛰어나 곽희파(郭熙派) 화풍을 토대로 한국적인 화풍을 완성하며 일본 실정시대(室町時代)의 수묵화에까지 영향을 미침.
한국>조선전기 , 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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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맹담(安孟耼)
조선 세종(世宗)의 부마ㆍ서예가. 본관은 죽산(竹山). 함길도 관찰사(咸吉道觀察使) 안망지(安望之)의 아들로, 세종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혼인함. 초서(草書)를 잘 쓰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며, 음률(音律)ㆍ약물(藥物)에도 밝음.
1415~1462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죽산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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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安珽)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서화가.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지낸 안처선(安處善)의 아들.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되어 곤양(昆陽)으로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었으며, 특히 그림에 뛰어나 매화와 대나무를 잘 그렸음.
1494~154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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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침(安琛)
조선 세조(世祖)~중종(中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순흥(順興).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성종실록(成宗實錄)》편찬에 참여하고, 문장과 송설체(松雪體)에 능함.
1445~1515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광주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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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安平大君)
조선 제4대 세종(世宗)의 셋째 아들. 김종서(金宗瑞) 등과 함께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세력에 맞서다가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역모 혐의로 유배된 후 사사됨. 시(詩)ㆍ서(書)ㆍ화(畫)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불렸고, 당대 제일의 명필(名筆)로 꼽힘.
1418~145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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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언(楊士彦)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청주(淸州). 회양(淮陽)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 자연을 즐기고, 시(詩)ㆍ서(書)에 능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ㆍ김구(金絿)ㆍ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사대(四大) 서예가로 불림.
1517~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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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손(柳耳孫)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서화가.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으로 서예에도 능했으며, 사자청(寫字廳)의 설립을 최초로 건의하여 사자관(寫字官)을 지냄. 신정(申珽)ㆍ유항(柳沆)등이 번역한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을 사자(寫字)함.
한국>조선전기 , 인명>예술인>서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