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121건)
표제어(96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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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년(金禧年)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자용(金自鎔)의 아들이고, 조식(曺植)의 문인(門人).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복권되어 통례(通禮)를 지냄.
1534~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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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金喜壽)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성중(李誠中)에게 수학하고, 대전별감(大殿別監)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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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덕원(羅德元)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금성(錦城).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명(明) 나라 제독(提督) 마귀(麻貴)를 도와 왜적을 격퇴함. 벼슬은 함안 현감(咸安縣監) 등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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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덕윤(羅德潤)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이산 현감(尼山縣監) 나사침(羅士忱)의 아들이며, 정개청(鄭介淸)의 문인. 정여립(鄭汝立)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귀향 갔다가 광해군 즉위 후 의금부 경력(義禁府經歷)ㆍ감찰(監察) 등을 지냄.
1557~?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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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덕준(羅德峻)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산 현감(尼山縣監) 나사침(羅士忱)의 아들이며, 정개청(鄭介淸)의 문인. 정여립(鄭汝立)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귀향 갔다가 해배 후 보은 현감(報恩縣監)을 지냄. 박순(朴淳)ㆍ이이(李珥)와 교유함.
1553~1604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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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춘(羅茂春)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출소(廢黜疏)를 올린 이위경(李偉卿)을 탄핵하다 관직을 삭탈당함.
1580~161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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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침(羅士忱)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진원 현감(晉原縣監)을 지낸 나질(羅晊)의 아들로, 이성 현감(尼城縣監)을 지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獄事)에 무고(誣告)로 인해 문초(問招)를 받았으나 바로 석방됨.
1525~1596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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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양좌(羅良佐)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 윤선거(尹宣擧)의 문인으로, 스승이 누명을 쓰자 상소하였다가 유배되기도 하였으며, 기사환국 때 자형 김수항(金壽恒)과 매제 이사명(李師命)이 극형을 당하자 먼 길을 달려가서 상을 치러줌.
1638~171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비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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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위소(羅緯素)
조선 인조(仁祖)~현종(顯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정묘호란 때 이원익(李元翼)을 도와 무기와 군량을 조달했으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냄.
1583~1667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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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소(羅宜素)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1624년(인조 2)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정랑(禮曹正郞) 등을 지냄.
1587~?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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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공철(南公轍)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동참하여 순정한 육경고문(六經古文)을 깊이 연찬하고,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많은 금석문(金石文)ㆍ비갈(碑碣)을 남긴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알려짐.
1760~1840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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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南九萬)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령(宜寧). 숙종 때 정치운영의 중심에 있으면서 소론(少論)의 영수로 지목됨. 문집으로 《약천집(藥泉集)》있음.
1629~171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령ㅣ강원도>강릉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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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南宮蓂)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부사(府使)를 지낸 남궁제(南宮悌)의 아들이며, 성혼(成渾)의 사위. 1591년(선조 24)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여 별좌(別坐)를 지냄.
1566~?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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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제(南宮悌)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남궁숙(南宮淑)의 아들이며 성혼(成渾)의 사돈으로, 연안 부사(延安府使) 등을 지냄. 성혼이 그에게 보낸 편지가 《우계집(牛溪集)》에 실려 있음.
154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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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복흥(南復興)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수의부위(修義副尉) 남맹하(南孟夏)의 아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무공(武功)을 세우고, 명(明) 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접반사(接伴使)를 지냄.
155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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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문(南尙文)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명(明) 나라의 경리(經理) 양호(楊鎬)가 뛰어난 학식에 감동되어 그의 문하가 되었고, 고고한 품행으로 금오랑(金吾郞)에 등용됨.
1520~160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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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南嶸)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의관ㆍ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남예석(南禮錫)의 아들.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벼슬하여 선조 때 어의(御醫)를 지냈으며, 광해군 때 음죽 현감(陰竹縣監) 등을 지냄.
1548~161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문경 , 인명>기술인>의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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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익(南龍翼)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의령(宜寧).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내고,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문명을 떨쳤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에 연루되어 명천(明川)에 유배되어 죽음.
1628~16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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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용(南有容)
조선 경종(景宗)~영조(英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남용익(南龍翼)의 증손.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과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음.
1698~177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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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응정(南應井)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남진(南軫)의 아들로,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령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