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7,284건)
표제어(1,52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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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姜絪)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우의정 강사상(姜士尙)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되었으며,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등을 지냄.
1555~163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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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姜絟)
조선 후기의 유학. 본관은 진주(晉州)로, 개암(介庵) 강익(姜翼)의 손자. 강익의 유고(遺稿)를 수습하여 정광연(鄭光淵)에게 발문을 부탁하는 등 문집 정리에 노력함.
?~166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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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윤(姜宗胤)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로, 이이(李珥)의 문인.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동생 강덕윤(姜德胤)과 함께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녹훈(錄勳)됨.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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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휘(姜晉暉)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로,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 강종경(姜宗慶)의 아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ㆍ선전관(宣傳官)을 지냈지만 30세의 나이로 요절함.
1567~159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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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첨(姜籤)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선조 때 사간(司諫)으로 있으면서 최영경(崔永慶)ㆍ정철(鄭澈) 등을 탄핵함.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ㆍ대사헌(大司憲)을 지냄.
1559~161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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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년(姜鶴年)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장령(掌令)으로서 공신들의 폐단을 상소하다가 파직됨. 효종(孝宗) 때 홍명하(洪命夏)의 상소로 신원되어 대사헌에 추증되고, 회덕의 용호사(龍湖祠)에 제향됨.
1585~164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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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항(姜沆)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주(晉州)로, 성혼(成渾)의 문인.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 일본에 잡혀간 뒤 성리학을 전파하여,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된 등원성와(藤原醒窩)에게 학문적 영향을 미침.
1567~161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영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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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립(姜弘立)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강신(姜紳)의 아들로, 광해군(光海君) 때 명(明) 나라가 후금(後金)을 치기 위해 원병을 요청하자 오도도원수(五道都元帥)로 출정하여 패한 뒤 후금에 항복함.
1560~162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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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망(姜徽望)
조선 현종(顯宗) 때의 유학. 본관은 진주(晉州). 오건(吳健)의 위패를 봉안한 서계서원(西溪書院)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사액을 받음.
162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합천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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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정(姜徽鼎)
조선 현종(顯宗) 때의 유학. 본관은 진주(晉州)로,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의 문인. 오건(吳健)의 위패를 봉안한 서계서원(西溪書院)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사액을 받음.
1634~167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합천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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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흡(姜洽)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김장생(金長生)ㆍ신흠(申欽)에게 사사(師事)하고, 현감(縣監) 등을 지냄. 병자호란 이후 태백산(太白山)에 은거하여 심장세(沈長世)ㆍ홍석(洪錫) 등과 함께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일컬어짐.
1602~168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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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섬(慶暹)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임진왜란(壬辰倭亂) 후 첫 번째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국교를 다시 열게 하고 임진왜란 때의 포로 1,340명을 데리고 돌아옴.
1562~1620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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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景宗)@조선
조선 제20대 왕. 재위 1720~1724. 숙종(肅宗)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희빈장씨(禧嬪張氏). 재위 기간 중 당쟁(黨爭)이 절정을 이룬 가운데 신변상으로나 정치상으로 많은 곤란을 겪음.
1688~172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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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具宬)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구사맹(具思孟)의 아들이자 원종(元宗)의 비(妃)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오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왕을 호종하고, 광해군 때 폐모론(廢母論)에 참여하지 않은 일로 사후(死後)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됨.
1558~161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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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용(具容)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문인.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아들로, 금화 현감(金化縣監)을 지내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권필(權韠)과 함께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전쟁 중에 겪은 고뇌와 갈등을 담은 작품을 많이 남김.
1569~1601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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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기(具仁基)
조선 인조(仁祖)의 문신. 해주 목사(海州牧使)를 지낸 구성(具宬)의 아들로, 배천 군수(白川郡守)ㆍ죽산 부사(竹山府使)를 지냈음.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훈련원(訓練院) 장관(將官)들과 더불어 화친을 반대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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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기(具仁墍)
조선 광해군(光海君)~숙종(肅宗) 때의 문신. 인조의 모후(母后)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조카로,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록됨. 벼슬이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사후(死後)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됨.
1597~1676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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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후(具仁垕)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무신.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록되었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국왕을 호위한 공으로 어영대장(御營大將)이 되고 영국공신(寧國功臣)에 책록됨. 벼슬은 좌의정(左議政)에 이름.
1578~1658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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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일(具鎰)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무신. 공조 판서 구인기(具仁墍)의 아들로, 횡성 현감(橫城縣監)으로 있을 때 묵은 땅을 개간하는 등 치적이 있었고, 황해도 병마절도사(黃海道兵馬節度使)ㆍ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등을 역임함.
1620~1695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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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격(權格)
조선 효종(孝宗)~현종(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춘추관 기주관(春秋官記注官)을 역임했으며《효종실록(孝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함.
1620~167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