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249건)
유의어(1,0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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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곡(丹谷) - 곽진(郭𡺽)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종(仁宗) 때의 학자. 생원 곽한(郭瀚)의 아들이며, 권우(權宇)의 문인.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함. 시문에 능하였고, 장현광(張顯光)ㆍ이준(李埈) 등과 사우관계를 맺음.
1568~162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풍기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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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곡거사(丹谷居士) - 곽진(郭𡺽)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종(仁宗) 때의 학자. 생원 곽한(郭瀚)의 아들이며, 권우(權宇)의 문인.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함. 시문에 능하였고, 장현광(張顯光)ㆍ이준(李埈) 등과 사우관계를 맺음.
1568~162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풍기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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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보(端甫)@허균 - 허균(許筠)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유성룡(柳成龍)ㆍ이달(李達)의 문인. 이이첨(李爾瞻)과 결탁하여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였으며, 반란을 계획하다 탄로되어 참수형을 당함.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인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씀.
1569~161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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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좌헌(端坐軒) - 이덕무(李德懋)
조선 정조(正祖) 때의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박제가(朴齊家)ㆍ유득공(柳得恭)ㆍ이서구(李書九) 등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내어 문명을 떨침. 명(明)과 청(淸) 나라의 학문과 고증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가져 실질적으로는 북학을 함.
1741~17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전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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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하(端夏) - 이단하(李端夏)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아들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름.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가운데 경학(經學)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저서에 《선묘보감(宣廟寶鑑)》ㆍ《외재집(畏齋集)》 등이 있음.
1625~1689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지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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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부(達夫)@고홍달 - 고홍달(高弘達)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로, 성주 통판(星州通判) 고현(高晛)의 아들.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유일(遺逸)로 천거되었으나 곧 물러나 부안(扶安)에 은거하여 학문에 몰두하였고, 권필(權韠)과 교유하였음.
1575~1644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부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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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수(聃壽)@김담수 - 김담수(金聃壽)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이조 정랑(吏曹正郞) 김정룡(金廷龍)의 아버지.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했으나 건강으로 과거를 포기하고 경전공부에 정진함. 저서로 《서계일고(西溪逸稿)》가 있음.
1535~160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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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湛軒) - 홍대용(洪大容)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북학파(北學派)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박지원(朴趾源)ㆍ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고,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하는 등 조선 후기 과학사상의 발전에 공헌함.
1731~178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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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大觀)@김기 - 김기(金圻)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했으며,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산장(山長)으로 《퇴계집(退溪集)》을 간행함.
1547~160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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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大器)@김대기 - 김대기(金大器)
조선 인조(仁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정홍명(鄭弘明) 형제 및 조홍립(曺弘立) 등과 교유함.
1557~162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담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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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大老) - 김상헌(金尙憲)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서인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함.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존경을 받음.
1570~165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ㅣ경기도>양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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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克中)@1585 - 권극중(權克中)@1585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권준(權俊)의 아들이며 최명룡(崔命龍)의 문인으로, 인목대비의 폐출 소식을 듣고 낙향하여 역(易)과 내단사상(內丹思想)에 심취해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등을 저술함.
1585~165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고부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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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흠(克欽) - 이득윤(李得胤)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ㆍ음악가. 본관은 경주(慶州). 괴산 군수(槐山郡守) 등을 지내고, 김장생(金長生) 등과 서신으로 역학과 음악을 토론함. 거문고 악보인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를 지음.
1553~163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경주 , 인명>예술인>음악인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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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재(近齋) - 박윤원(朴胤源)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김창협(金昌協)ㆍ이재(李縡)ㆍ김원행(金元行)의 학통을 계승하여 홍직필(洪直弼)에게 전수함.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예학(禮學)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저서로 《근재집(近齋集)》ㆍ《근재예설(近齋禮說)》이 있음.
1734~179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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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제(根悌) - 박근제(朴根悌)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진원(珍原). 왕자 사부(王子師傅) 박광전(朴光前)의 아들이며 박근효(朴根孝)의 동생으로, 임진왜란 때 형 박근효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정유재란 때 아버지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출전함.
1560~1630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진원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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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휴(謹休) - 이만각(李晩慤)
조선 고종(高宗) 때의 학자. 본관은 진보(眞寶)로,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조카. 경학연구 및 후진양성에 진력하였으며, 저서로 《신암문집(愼庵文集)》이 있음.
1815~187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보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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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錦江)@기효간 - 기효간(奇孝諫)
조선 인종(仁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행주(幸州). 고흥군(高興君) 기대유(奇大有)의 아들로, 김인후(金麟厚)ㆍ이항(李恒)의 문인(門人). 학문과 후진양성에 주력하여 호남의 은덕군자(隱德君子)로 불렸음.
1530~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장성ㅣ경기도>고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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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원(琴聞遠) - 금난수(琴蘭秀)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봉화(奉化).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장예원 사평(掌隸院司評)ㆍ봉화 현감(奉化縣監) 등을 지내고, 귀향한 뒤에는 퇴계 학문을 강구함.
1530~160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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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재(琴惺齋) - 금난수(琴蘭秀)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봉화(奉化).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장예원 사평(掌隸院司評)ㆍ봉화 현감(奉化縣監) 등을 지내고, 귀향한 뒤에는 퇴계 학문을 강구함.
1530~160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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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錦湖)@강응황 - 강응황(姜應璜)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주(晉州)로,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ㆍ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일로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병조 좌랑(兵曹佐郞)ㆍ예산 현감(禮山縣監)ㆍ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냄.
1571~164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함양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