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249건)
표제어(20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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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朴齊家)
조선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실학자. 시문 사대가(詩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박지원(朴趾源)ㆍ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 등과 함께 북학파(北學派)를 이룸. 저서에 《북학의(北學議)》ㆍ《정유고략(貞蕤稿略)》 등이 있음. 춘당대 무과(春塘臺武科)에 장원하여 오위장(五衛將)ㆍ영평 현감(永平懸監) 등을 지냄.
1750~1805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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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종(朴周鍾)
조선 철종(哲宗)~고종(高宗) 때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많은 저술을 남김.
1813~188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천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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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계(朴知誡)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왕자사부(王子師傅)ㆍ동몽교관(童蒙敎官) 등에 임명되나 취임하지 않고,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냄. 주자학에 조예가 깊고, 저서로 《잠야집(潛冶)》등이 있음.
1573~163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함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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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청(淸) 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함.
1737~18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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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화(朴枝華)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정선박씨(旌善朴氏)의 시조. 서경덕(徐敬德)의 문인(門人)으로, 유(儒)ㆍ불(佛)ㆍ도(道)에 해박하고 특히 기수학(氣數學)에 뛰어남.
1513~1592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정선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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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朴晉慶)
조선 선조(宣祖)~현종(顯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 영숭전 참봉(永崇殿參奉)을 지내고, 병자호란 때 최현(崔晛)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킴.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됨.
1581~166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선산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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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金壽增)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김상헌(金尙憲)의 손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으로 들어가 은둔함.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음.
1624~1701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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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金壽興)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을 지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장기(長鬐)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 저서에 《퇴우당집(退憂堂集)》 5책이 있음.
1626~169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장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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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찬(金是瓚)
조선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주(光州)로, 성균생원 김성익(金聖翼)의 아들. 학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천거되고 그 후 봉사(奉事)ㆍ직장(直長) 등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함.
1754~183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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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행(金亮行)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민우수(閔愚洙)의 문인으로, 형조 참판(刑曹參判) 등을 지냄.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고, 이우신(李友信)ㆍ민치복(閔致福)ㆍ박준원(朴準源) 등을 배출함.
1715~177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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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옹(金宇顒)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속자치통감강목(續自治通鑑綱目)》을 찬하고, 부제학(副提學)ㆍ이조 참판(吏曹參判) 등을 지냄.
1540~160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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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행(金元行)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종조(從祖) 김창집(金昌集)이 사사되고 일가가 모두 유배된 후 벼슬을 사양하고 성리학에 전념함.
1702~177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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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수(金裕壽)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선산(善山). 채제공(蔡濟恭)의 《번암집(樊巖集)》에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음.
1695~176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선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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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金堉)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청풍(淸風). 대동법(大同法) 실시, 수차(水車)ㆍ수레 사용, 화폐 통용 등을 주장한 정치관료로서 실학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영의정(領議政)을 지냄.
1580~165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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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金長生)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이이(李珥)의 문인(門人)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서인(西人)의 영수 역할을 하였고,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함.
1548~163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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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金宗德)
조선 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성학입문(聖學入門)》 등 많은 저술을 남김.
1724~179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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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金集)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예학(禮學)을 대성시킴. 대사헌(大司憲)ㆍ좌찬성(左贊成) 등을 지내고, 효종과 북벌(北伐)을 계획함.
1574~1656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연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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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즙(金昌緝)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다섯째 아들. 조봉원(趙逢源)의 문인이며, 여섯 형제들이 문장의 대가(大家)라 육창(六昌)이라 불림.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된 뒤 학문에 전념하였고,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냄.
1662~171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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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金昌協)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집(金昌集)의 동생.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은거함.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이기론(理氣論)을 절충한 학설을 주장하고, 《농암집(農巖集)》을 남김.
1651~170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경기도>과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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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