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143건)
표제어(27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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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필(金世弼)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복직되었으나, 조광조(趙光祖)를 사사(賜死)한 중종의 과오를 규탄하다가 장배(杖配)됨. 경학(經學)에 밝았음.
1473~153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경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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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령(金壽寧)
조선 단종(端宗)~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국조보감(國朝寶鑑)》ㆍ《동국통감(東國通鑑)》ㆍ《세조실록(世祖實錄)》ㆍ《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함.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이 뛰어났음.
1436~147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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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온(金守溫)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학자ㆍ문신. 세종ㆍ세조(世祖) 때 편찬 및 국역 사업에 공헌하고, 특히 시문에 뛰어나 〈희청부(喜晴賦)〉는 명 나라에까지 알려짐.
1410~1481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영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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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金壽增)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김상헌(金尙憲)의 손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으로 들어가 은둔함.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음.
1624~1701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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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金壽興)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을 지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장기(長鬐)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 저서에 《퇴우당집(退憂堂集)》 5책이 있음.
1626~169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장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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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金叔滋)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스승인 길재(吉再)로부터 정몽주(鄭夢周)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를 아들 김종직(金宗直)에게 잇게 함으로써 주자학을 발전시킴.
1389~145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선산ㅣ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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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金湜)@조선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현량과(賢良科)에 장원 급제하고, 기묘팔현(己卯八賢)의 한 사람으로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개혁정치를 펼쳤으나, 기묘사화와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다가 자결함. 선조(宣祖) 때 영의정에 추증됨.
1482~152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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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국(金安國)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사림파(士林派)의 학통을 계승하고, 성리학을 이념으로서만이 아닌 실천적 학문으로서 중시함.
1478~1543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이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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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金楊震)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역학(易學)ㆍ음양(陰陽) 및 복서(卜筮)에 통달하였으며, 이행(李荇)ㆍ정희량(鄭希良)ㆍ권달수(權達手) 등과 교유가 깊었음.
1467~1535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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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행(金亮行)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민우수(閔愚洙)의 문인으로, 형조 참판(刑曹參判) 등을 지냄.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고, 이우신(李友信)ㆍ민치복(閔致福)ㆍ박준원(朴準源) 등을 배출함.
1715~177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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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거(金彦琚)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주(光州). 김정(金禎)의 아들로, 김인후(金麟厚)ㆍ이황(李滉)ㆍ기대승(奇大升) 등과 교우함.
1503~1584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광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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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옹(金宇顒)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속자치통감강목(續自治通鑑綱目)》을 찬하고, 부제학(副提學)ㆍ이조 참판(吏曹參判) 등을 지냄.
1540~160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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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행(金元行)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종조(從祖) 김창집(金昌集)이 사사되고 일가가 모두 유배된 후 벼슬을 사양하고 성리학에 전념함.
1702~177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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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수(金裕壽)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선산(善山). 채제공(蔡濟恭)의 《번암집(樊巖集)》에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음.
1695~176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선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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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金堉)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청풍(淸風). 대동법(大同法) 실시, 수차(水車)ㆍ수레 사용, 화폐 통용 등을 주장한 정치관료로서 실학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영의정(領議政)을 지냄.
1580~165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가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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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제(金允悌)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주(光州)로, 장례원 사평(掌隷院司評) 김후(金詡)의 아들. 나주 목사(羅州牧使) 등 지방관을 지내고, 고향에 돌아가 정철(鄭澈)ㆍ김성원(金成遠) 등 후학을 양성함.
1501~1572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담양ㅣ전라도>광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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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존(金仁存)
고려 선종(宣宗)~인종(仁宗) 때의 문신ㆍ학자.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중국에 여러 번 사신으로 다녔으며, 중요한 국사(國事)마다 왕의 자문역을 했음.
?~1127 한국>고려전기 , 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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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金麟厚)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울산(蔚山).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ㆍ옥과현감(玉果縣監) 등을 지냈으나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함.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경(誠敬)의 실천을 중시하였고, 1796년(정조 20)에 문묘에 배향됨.
1510~1560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장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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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金馹孫)
조선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스승인 김종직(金宗直)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록(實錄)에 기재한 일로 인해 훈구파(勳舊派)의 미움을 사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사형당함.
1464~149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청도ㅣ경상도>밀양ㅣ경기도>용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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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金長生)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이이(李珥)의 문인(門人)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서인(西人)의 영수 역할을 하였고,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함.
1548~163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