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280건)
유의어(2,813건)
-
참의(參議) - 권문언(權文彦)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권규(權逵)의 아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門人)으로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음.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증직됨.
1530~159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단성 , 인명>문사>학자
-
창균(蒼筠) - 김기보(金箕報)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갔으며, 품성이 충간(忠簡)하고 문장이 뛰어남.
1531~158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녕군(昌寧君) - 성담년(成聃年)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성담수(成聃壽)의 동생. 교리(校理) 등을 지냈으며,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음.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녕선생(昌寧先生) - 성임(成任)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성염조(成念祖)의 아들로,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됨. 《국조보감(國朝寶鑑)》ㆍ《경국대전(經國大典)》편찬에 참여하고, 글씨와 시문에 뛰어남.
1421~148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랑(滄浪) - 성문준(成文濬)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둘째 아들로, 성혼이 무욕(誣辱)을 당하자 임천(林泉)에 은거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냄. 박학다식하며 글씨에 능함.
1559~162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랑자(滄浪子) - 성문준(成文濬)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둘째 아들로, 성혼이 무욕(誣辱)을 당하자 임천(林泉)에 은거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냄. 박학다식하며 글씨에 능함.
1559~162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창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서(昌瑞) - 이몽규(李夢奎)
조선 인종(仁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이인신(李仁臣)의 아들로, 종실이었던 이모부 흥녕부정(興寧副正) 이린(李磷)에게 출계함. 사후에 명현(名賢)으로 평가받아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되었으며, 이이(李珥)가 지은 행장(行狀)과 김육(金堉)이 지은 전기(傳記)가 있음.
1510~1563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보령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
창석(蒼石) - 이준(李埈)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흥양(興陽).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남인(南人) 세력을 결집하고 여론을 주도함. 임진왜란(壬辰倭亂)ㆍ정유재란(丁酉再亂)ㆍ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조달함.
1560~163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설(蒼雪) - 권두경(權斗經)
조선 숙종(肅宗)~경종(景宗) 때의 문신ㆍ학자. 권유(權濡)의 아들이며,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 등을 지냄. 시와 문장에 뛰어나고, 인물의 출처(出處)와 정치의 득실(得失) 등 다방면에 안목이 뛰어남.
1654~172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설재(蒼雪齋) - 권두경(權斗經)
조선 숙종(肅宗)~경종(景宗) 때의 문신ㆍ학자. 권유(權濡)의 아들이며,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 등을 지냄. 시와 문장에 뛰어나고, 인물의 출처(出處)와 정치의 득실(得失) 등 다방면에 안목이 뛰어남.
1654~172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집(昌緝) - 김창즙(金昌緝)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다섯째 아들. 조봉원(趙逢源)의 문인이며, 여섯 형제들이 문장의 대가(大家)라 육창(六昌)이라 불림.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된 뒤 학문에 전념하였고,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냄.
1662~171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해처사(滄海處士) - 허격(許格)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양천(陽川). 이안눌(李安訥)에게 수학하였는데 스승이 죽은 후 심상(心喪) 3년을 지내고 김상헌(金尙憲) 문하에서 종유(從遊)하였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굴욕적인 강화로 끝나자 통곡하고 학문을 그만두었음.
1607~1690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단양 , 인명>문사>학자
-
창협(昌協) - 김창협(金昌協)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집(金昌集)의 동생.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은거함.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이기론(理氣論)을 절충한 학설을 주장하고, 《농암집(農巖集)》을 남김.
1651~170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경기도>과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창흡(昌翕) - 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
채(寀) - 이채(李寀)
조선 전기의 종친. 태종(太宗)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맏아들로, 내자시 직장(內資寺直長) 이차궁(李次弓)의 딸과 혼인함. 학문을 좋아하여 경사(經史)에 통달함.
1411~149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전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왕실>종친
-
채산(菜山) - 정약용(丁若鏞)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유형원(柳馨遠)ㆍ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實學)을 집대성함.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함.
1762~1836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강진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처눌(處訥) - 손처눌(孫處訥)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 본관은 일직(一直).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학문과 효행이 뛰어남. 왜란(倭亂)과 호란(胡亂) 때 창의하고, 난리 후에 향교 재건에 앞장섬. 대구(大邱) 청호서원(靑湖書院)에 배향됨.
1553~163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
-
지산수(芝山叟) - 이황(李滉)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주리론적(主理論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한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장(宗匠).
1501~1570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지상(砥相) - 이단하(李端夏)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아들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름.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가운데 경학(經學)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저서에 《선묘보감(宣廟寶鑑)》ㆍ《외재집(畏齋集)》 등이 있음.
1625~1689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지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지성(至誠) - 홍지성(洪至誠)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여경(餘慶) 홍유손(洪裕孫)의 아들. 사화로 고초를 겪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여 학문에 매진하고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특히 고문에 정통했음.
1528~1597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