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17건)
유의어(46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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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惟庸) - 호유용(胡惟庸)
중국 원(元) 순제(順帝)~명(明) 태조(太祖) 때의 문신. 원 나라 말기에 명 태조에게 인정을 받아 벼슬하여 명 나라 때 좌승상(左丞相)까지 올랐으나 모역죄(謀逆罪)로 처형됨. 이후 그의 죄에 연좌되어 당여(黨與) 3만여 명이 처형됨.
?~1380 중국>명ㅣ중국>원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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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외(劉員外) - 유황상(劉黃裳)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 병부 원외랑(兵部員外郞) 등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흠차경략찬획방해어왜군무(欽差經略贊畫防海禦倭軍務)로 참전하여 송응창(宋應昌)의 휘하에서 종사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였음.
1529~1595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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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維禎) - 허국(許國)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신종(神宗) 때의 문신ㆍ학자. 1567년 목종(穆宗)이 등극하였을 때 한림 검토(翰林檢討)로서 병과 급사중(兵科給事中) 위시량(魏時亮)과 함께 반조(頒詔)의 사명을 띠고 조선에 사신으로 옴. 저서에 《조선일기(朝鮮日記)》ㆍ《문목공집(文穆公集)》 등이 있음.
1527~1596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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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惟中) - 엄숭(嚴嵩)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 때의 문신. 벼슬이 태자 태사(太子太師)에 이르렀으며, 왕의 총애만 믿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뇌물을 탐하여 크게 치부(致富)함. 급사중(給事中) 양계성(楊繼盛)이 세 번이나 상소하여 그의 죄악를 논박하다가 살해됨.
1480~1568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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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維喆) - 하원길(夏原吉)
중국 명(明) 나라 태조(太祖)~선종(宣宗) 때의 문신. 다섯 명의 황제를 보좌한 명대신으로, 호부 상서(戶部尙書) 등을 지냈으며, 죽은 후 대신 최고의 영예인 ‘태사(太師)’에 추증됨. 저서에 《하충정집(夏忠靖集)》 등이 있음.
1366~1430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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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감(劉太監) - 유원(劉遠)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 때의 문신. 1545년 조선 인종(仁宗)의 국상(國喪) 때 태감(太監)으로서 행인(行人) 왕학(王鶴)과 함께 황제가 내린 제전(祭典)ㆍ시호(諡號)ㆍ부의(賻儀)를 가지고 사신으로 옴.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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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元價) - 주지번(朱之蕃)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 한림원 수찬(翰林院修撰) 등을 지냈으며, 1606년(조선 선조 39)에 양유년(梁有年)과 함께 황제의 원손(元孫) 탄생을 알리는 조서를 가지고 조선에 사신으로 옴. 돌아갈 때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난설헌집(蘭雪軒集)》을 가지고 가서 명에서 간행함.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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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개(元介) - 주지번(朱之蕃)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 한림원 수찬(翰林院修撰) 등을 지냈으며, 1606년(조선 선조 39)에 양유년(梁有年)과 함께 황제의 원손(元孫) 탄생을 알리는 조서를 가지고 조선에 사신으로 옴. 돌아갈 때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난설헌집(蘭雪軒集)》을 가지고 가서 명에서 간행함.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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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길(原吉)@하원길 - 하원길(夏原吉)
중국 명(明) 나라 태조(太祖)~선종(宣宗) 때의 문신. 다섯 명의 황제를 보좌한 명대신으로, 호부 상서(戶部尙書) 등을 지냈으며, 죽은 후 대신 최고의 영예인 ‘태사(太師)’에 추증됨. 저서에 《하충정집(夏忠靖集)》 등이 있음.
1366~1430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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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原德)@이현 - 이현(李賢)
중국 명(明) 나라 영종(英宗)~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이부 상서(吏部尙書)ㆍ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 등을 지냈고, 황제의 칙령을 받아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를 찬술함.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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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락자(苑洛子) - 한방기(韓邦奇)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 때의 문신ㆍ학자. 남병부상서(南兵部尙書) 등을 지냄. 경사(經史)ㆍ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악률(樂律)ㆍ병법(兵法) 등에 능통하였으며, 저서로 《홍범도해(洪範圖解)》ㆍ《역학계몽의견(易學啓蒙意見)》 등이 있음
1479~1555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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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元美) - 왕세정(王世貞)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신종(神宗) 때의 문신ㆍ문인ㆍ학자. 젊을 때부터 문명이 높아 ‘후칠자(後七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명대 후기 고문사파(古文辭派)의 지도자가 됨. 형부 상서(刑部尙書) 등을 지냄.
1526~1590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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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元馭) - 왕석작(王錫爵)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신종(神宗) 때의 문신. 예부 상서(禮部尙書) 등을 거쳐 재상을 지냈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조정의 의론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음.
1534~1610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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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사(袁主事) - 원황(袁黃)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송응창(宋應昌)을 보좌하여 참전하였고, 천문(天文)ㆍ술수(術數)ㆍ의학(醫學)ㆍ수리(水利)에 능통하였으며, 저서에 《역법신서(曆法新書)》ㆍ《요범사훈(了凡四訓)》 등이 있음.
1533~1606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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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차관(袁差官) - 원황(袁黃)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송응창(宋應昌)을 보좌하여 참전하였고, 천문(天文)ㆍ술수(術數)ㆍ의학(醫學)ㆍ수리(水利)에 능통하였으며, 저서에 《역법신서(曆法新書)》ㆍ《요범사훈(了凡四訓)》 등이 있음.
1533~1606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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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창(應昌)@송응창 - 송응창(宋應昌)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ㆍ장군. 병부 우시랑(兵部右侍郞)ㆍ대사마(大司馬)를 지내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략 군문(經略軍門)으로 임명되어 제독 군무(提督軍務) 이여송(李如松) 등과 명군(明軍) 4만여 명을 이끌고 참전함.
1536~1606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무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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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義)@건의 - 건의(蹇義)
중국 명(明) 나라 태조(太祖)~선종(宣宗) 때의 문신. 오랫동안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내면서 다섯 명의 황제를 보좌하고, 명초(明初)에 전장제도(典章制度)의 수립과 확립에 기여함.
1363~1435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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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려(醫閭) - 하흠(賀欽)
중국 명(明) 헌종(憲宗)~무종(武宗) 때의 문신ㆍ학자. 호과 급사중(戶科給事中)을 역임한 뒤 낙향하여 진헌장(陳獻章)에게 수학하며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저서에 《의려집(醫閭集)》이 있음.
1437~1510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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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존(靜存) - 예겸(倪謙)
중국 명(明) 나라 영종(英宗)~헌종(憲宗) 때의 문신. 1450년(조선 세종 32) 경제(景帝)의 등극을 알리러 조선에 온 사신으로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내고, 저서로 《조선기사(朝鮮紀事)》를 남김.
1415~1479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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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定之)@유정지 - 유정지(劉定之)
중국 명(明) 나라 영종(英宗)~헌종(憲宗) 때의 문신ㆍ문인. 예부 시랑(禮部侍郞) 등을 지냈으며, 학문이 깊고 시문(詩文)에 능함. 저서로 《매재집(呆齋集)》ㆍ《역경도석(易經圖釋)》등이 있음.
1409~1469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