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735건)
유의어(1,18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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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손(顓孫) - 전손사(顓孫師)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학자. 공자(孔子)의 제자로, 송(宋) 나라 이후 공문십철(孔門十哲)로 성묘(聖廟)에 종향(從享)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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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손자(顓孫子) - 전손사(顓孫師)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학자. 공자(孔子)의 제자로, 송(宋) 나라 이후 공문십철(孔門十哲)로 성묘(聖廟)에 종향(從享)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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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장(傳首章) - 대학(大學)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중국 송(宋) 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고, 송 나라의 주희(朱熹)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음.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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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십장(傳十章) - 대학(大學)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중국 송(宋) 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고, 송 나라의 주희(朱熹)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음.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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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대제(田氏代齊) - 전화(田和)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제후. 재위 B.C.386~B.C.384. B.C.391년에 강공(康公)을 몰아내고 스스로 군위(君位)에 올라 B.C.386년에 주(周) 천자로부터 제후로 인정받음. 이 일로 제 나라 제후의 성이 바뀌었다 하여 일명 '전씨대제(田氏代齊)'로 불림.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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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제(田嬰齊) - 위왕(威王)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제후. 재위 B.C.378~B.C.343. 환공(桓公)의 아들로, 추기(鄒忌)ㆍ전기(田忌)ㆍ손빈(孫臏) 등을 등용하여 안정을 이루고, 임치(臨淄)의 직하(稷下)에 학궁을 설치한 뒤 각국의 명사들을 초청하는 등 부국강병을 이룩함.
?~B.C.320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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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장(傳五章) - 대학(大學)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중국 송(宋) 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고, 송 나라의 주희(朱熹)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음.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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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제(田因齊) - 위왕(威王)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제후. 재위 B.C.378~B.C.343. 환공(桓公)의 아들로, 추기(鄒忌)ㆍ전기(田忌)ㆍ손빈(孫臏) 등을 등용하여 안정을 이루고, 임치(臨淄)의 직하(稷下)에 학궁을 설치한 뒤 각국의 명사들을 초청하는 등 부국강병을 이룩함.
?~B.C.320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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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획(展獲) - 유하혜(柳下惠)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의 대부. 사사(士師)의 직책을 수행할 때 세 번이나 쫓겨나면서도 직도(直道)를 견지하였던 고사로 유명하며, ‘화성(和聖)’으로 일컬어짐.
B.C.720~B.C.621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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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현(絶絃) - 백아절현(伯牙絶絃)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의 음악가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정확하게 이해해 주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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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여(接輿) - 육통(陸通)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의 광인(狂人). 소왕(昭王) 때 나라에 법도가 없음을 보고 미친 척하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음.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에 공자(孔子)의 집을 지나며 부른 봉가(鳳歌)가 있음.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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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곽군(靖郭君) - 전영(田嬰)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장군. 위왕(威王)의 아들이자 맹상군(孟嘗君)의 아버지로, 위(魏) 나라의 군사를 대패시키는 등 제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 데 공헌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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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鄭僑)@공손교 - 공손교(公孫僑)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정(鄭) 나라의 재상. 정(鄭) 목공(穆公)의 손자로, 춘추전국시대 제일의 외교가로 꼽힘. 예법(禮法)으로 안을 다스리고 구설(口舌)로 밖을 제어하므로, 당시 강국인 진(晉)과 초(楚)의 침략을 받지 않았음.
?~B.C.522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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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井伯) - 백리해(百里奚)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 목공(穆公) 때의 대부. 목공을 패주(霸主)의 지위로 이끄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움.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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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鄭伯)@문공 - 문공(文公)@춘추전국(정)
중국 춘추전국시대 정(鄭) 나라의 제후. 재위 B.C.672~B.C.637. 여공(厲公)의 아들로, 진(晉) 나라 문공(文公)이 망명할 때에 잘 접대하지 않고 치욕을 주어 문공이 중원의 패자가 된 후에 소인배로 지목받아 토벌 대상이 됨.
?~B.C.637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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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鄭伯) - 장공(莊公)@춘추전국(정)
중국 춘추전국시대 정(鄭) 나라의 제후. 무공(武公)의 아들. 탁월한 지략과 수완으로 친동생 공숙단(共叔段)이 친모 무강(武姜)과 짜고 반역을 일으키자 일거에 진압하고, 뛰어난 명신들의 보좌를 받으면서 정 나라의 전성기를 구가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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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장(正心章) - 대학(大學)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중국 송(宋) 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고, 송 나라의 주희(朱熹)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음.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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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산(鄭子産) - 공손교(公孫僑)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정(鄭) 나라의 재상. 정(鄭) 목공(穆公)의 손자로, 춘추전국시대 제일의 외교가로 꼽힘. 예법(禮法)으로 안을 다스리고 구설(口舌)로 밖을 제어하므로, 당시 강국인 진(晉)과 초(楚)의 침략을 받지 않았음.
?~B.C.522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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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鄭莊) - 장공(莊公)@춘추전국(정)
중국 춘추전국시대 정(鄭) 나라의 제후. 무공(武公)의 아들. 탁월한 지략과 수완으로 친동생 공숙단(共叔段)이 친모 무강(武姜)과 짜고 반역을 일으키자 일거에 진압하고, 뛰어난 명신들의 보좌를 받으면서 정 나라의 전성기를 구가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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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적(趙籍) - 열후(烈侯)
중국 춘추전국시대 조(趙) 나라의 제후. 제위 B.C.403~B.C.400. 진(晉) 나라 대부로서 위열왕(威烈王)의 명을 받아 조 나라의 제후로 봉해짐.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