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0건)
유의어(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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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경(司馬鏡) - 사마휘(司馬徽)
중국 후한(後漢)의 은자. 유현덕(劉玄德)이 사마휘에게 인재를 추천하여 주기를 청하였는데, 제갈량(諸葛亮)ㆍ방통(龐統)을 추천함. 제갈량(諸葛亮)ㆍ서서(徐庶) 등과 종유하며 은거생활을 하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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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덕조(司馬德操) - 사마휘(司馬徽)
중국 후한(後漢)의 은자. 유현덕(劉玄德)이 사마휘에게 인재를 추천하여 주기를 청하였는데, 제갈량(諸葛亮)ㆍ방통(龐統)을 추천함. 제갈량(諸葛亮)ㆍ서서(徐庶) 등과 종유하며 은거생활을 하였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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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向平) - 상장(向長)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은자.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에 정통하였고, 늙어서는 북해(北海)의 금경(禽慶)과 함께 오악(五嶽)의 명산을 두루 유람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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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尙平) - 상장(向長)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은자.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에 정통하였고, 늙어서는 북해(北海)의 금경(禽慶)과 함께 오악(五嶽)의 명산을 두루 유람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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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徐孺) - 서치(徐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고사(高士). 예장 태수(豫章太守) 진번(陳蕃)이 빈객을 접대하는 일이 없었으나, 오직 그를 위해 하나의 의자를 마련하여 그가 오면 내어놓고 떠난 후에 다시 걸어두었다는 고사로 유명함.
97~16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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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尙子) - 상장(向長)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은자.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에 정통하였고, 늙어서는 북해(北海)의 금경(禽慶)과 함께 오악(五嶽)의 명산을 두루 유람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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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평(向子平) - 상장(向長)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은자.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에 정통하였고, 늙어서는 북해(北海)의 금경(禽慶)과 함께 오악(五嶽)의 명산을 두루 유람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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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尙長) - 상장(向長)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은자.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에 정통하였고, 늙어서는 북해(北海)의 금경(禽慶)과 함께 오악(五嶽)의 명산을 두루 유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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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羊裘)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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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수(羊裘叟)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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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어부(羊裘漁父)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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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기구(襄陽耆舊) - 방덕공(龐德公)
중국 후한(後漢) 때의 처사(處士). 유표(劉表)가 벼슬하기를 청하였으나 사절하고 양양(襄陽)의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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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로(嚴老)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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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릉(嚴陵)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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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자(嚴子)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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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劉仙) - 유신(劉晨)
중국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의 서생(書生). 전설에 완조(阮肇)와 함께 천태산(天台山)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선녀를 만나 혼인한 후 반년 만에 고향이 그리워 돌아와 보니, 자손이 이미 7대까지 내려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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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孺子) - 서치(徐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고사(高士). 예장 태수(豫章太守) 진번(陳蕃)이 빈객을 접대하는 일이 없었으나, 오직 그를 위해 하나의 의자를 마련하여 그가 오면 내어놓고 떠난 후에 다시 걸어두었다는 고사로 유명함.
97~16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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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룡(子龍)@신도반 - 신도반(申屠蟠)
중국 후한(後漢) 말의 학자ㆍ은자. 당고(黨錮)의 화를 피해 산 속에 들어가 살면서 대장군 하진(何進)과 동탁(董卓) 등의 초빙을 물리치고 절조(節操)를 지키며 여생을 마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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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릉(子陵) - 엄광(嚴光)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은자. 벗으로 지내던 광무제가 왕이 된 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은둔하였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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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子治)@하복 - 하복(夏馥)
중국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의 문신ㆍ은자. 당고(黨錮)의 화를 피해 이름을 숨기고 대장간에서 고용살이를 하다가 여생을 마침. 덕행으로써 팔고(八顧)의 한 사람으로 불림.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