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121건)
표제어(96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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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응인(韓應寅)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부사직(副司直) 한경남(韓敬男)의 아들. 한어(漢語)에 능하여 수차례 명(明) 나라에 다녀오고, 임진왜란 때 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의 접반관(接伴官)이 됨.
1554~1614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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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모(韓翼謨)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신원(伸寃) 과정에서 삭직되고 유배되었으며,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1703~?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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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韓準)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한수경(韓守慶)의 아들로,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사건을 알리는 비밀장계를 올린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에 책록됨. 글씨를 잘 써서 사자관(寫字官)을 지냄.
1542~1601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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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겸(韓浚謙)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경성 판관(鏡城判官)을 지낸 한효윤(韓孝胤)의 아들이며, 인조의 장인. 예학(禮學)과 국가의 고사(故事)에 밝고,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편찬에 참여함.
1557~162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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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민(韓俊敏)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송재(松齋) 한충(韓忠) 손자로, 영릉 참봉(英陵參奉) 등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사직하였음.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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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침(韓沈)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서청군(西淸君) 한삼덕(韓參德)의 둘째 아들로, 찰방(察訪) 한부(韓溥)의 동생이며 공조 정랑(工曹正郞) 한연(韓淵)의 형. 찰방(察訪) 등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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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韓濩)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삼화(三和). 글씨를 잘 써서 외교문서 등을 맡아 썼으며, 중국에 사절이 갈 때도 서사관으로 파견되어 정묘한 필치로 명성을 떨침.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루는 서예가로서, 사자관체(寫字官體)라는 서체가 그로부터 형성됨.
1543~16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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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교(許喬)@조선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문신ㆍ학자인 허목(許穆)의 아버지로, 포천 현감(泡川縣監) 등을 지냄.
1567~163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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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ㆍ문인.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유성룡(柳成龍)ㆍ이달(李達)의 문인. 이이첨(李爾瞻)과 결탁하여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였으며, 반란을 계획하다 탄로되어 참수형을 당함.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인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씀.
1569~161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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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許穆)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양천(陽川).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예송(禮訟) 논쟁에서 남인(南人)을 주도하며 송시열(宋時烈)의 서인(西人)과 대립함. 사상적으로 이황(李滉)ㆍ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李瀷)에게 연결함.
1595~168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연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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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許筬)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으로,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직고하고, 임진왜란 때는 군병모집에 진력함.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548~161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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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필(許雲弼)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영천 군수(榮川郡守)를 지낸 허충길(許忠吉)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김해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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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적(許積)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남인(南人)으로 제1ㆍ2차 예송(禮訟)에서 서인(西人)과 대결했으며, 제2차 예송에서 승리하여 집권한 뒤 탁남(濁南)의 영수가 됨. 아들 허견(許堅)의 역모사건에 연좌되어 사사되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신원됨.
1610~1680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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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옹(玄德顒)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현기(玄琦)의 아들이자, 영천 군수(永川郡守) 현덕량(玄德良)의 동생으로, 보은 현감(報恩縣監)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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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가신(洪可臣)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민순(閔純)의 문인으로,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淸亂功臣)에 책록됨.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입각하여 노장(老莊)ㆍ불교(佛敎)를 비판함.
1541~161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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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소(洪敬紹)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철원 도호부사(鐵原都護府使) 홍기영(洪耆英)의 아들이며 손우재(遜愚齋) 홍석(洪錫)의 아버지로, 익산 군수(益山郡守) 등을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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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우(洪儆禹)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홍천석(洪天錫)의 아들로, 곽산 현령(郭山縣令)ㆍ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 등을 지냄.
1606~?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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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洪大容)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북학파(北學派)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박지원(朴趾源)ㆍ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고,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하는 등 조선 후기 과학사상의 발전에 공헌함.
1731~178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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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원(洪大源)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직장(直長) 홍의인(洪義人)의 아들이며 수백재(守白齋) 홍주익(洪柱翼)의 아버지로, 한성부 주부(漢城府主簿)를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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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종(洪萬鍾)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홍주문(洪柱文) 의 아들로, 1666년(현종 7)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조 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냄.
163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