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249건)
표제어(20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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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申欽)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평산(平山). 계축화옥(癸丑禍獄) 때 선조의 유교칠신(遺敎七臣)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었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삼정승을 지냄. 이정귀(李廷龜)ㆍ장유(張維)ㆍ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으로 일컬어짐.
1566~1628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춘천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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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영(吳守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인ㆍ학자.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으로, 글씨를 잘 써 금보(琴輔)ㆍ이숙량(李叔樑) 등과 함께 ‘선성삼필(宣城三筆)’이라 불림.
1521~160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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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벌(吳汝橃)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고창(高敞). 오운(吳澐)의 아들이며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창원 부사(昌原府使) 등을 지냄. 저서로 《중국역대총론(中國歷代總論)》ㆍ《동국역대기사(東國歷代紀事)》 등이 있음.
1579~1635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고창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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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趙翼)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 좌의정(左議政)을 역임함.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로 예학에 밝았으며 음률(音律)ㆍ병법(兵法)ㆍ복서(卜筮)에도 능했음.
1579~165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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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수(趙仁壽)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풍양(豊壤). 분무공신(奮武功臣) 조현명(趙顯命)의 아버지로, 박세채(朴世采)의 문하에서 수학함.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등을 지냈으나,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 이후 두문불출하고 학문에 전념함.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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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임도(趙任道)
조선 인조(仁祖) 때의 학자.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의 문묘 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는 정인홍(鄭仁弘)을 규탄함.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천거로 공조 좌랑(工曹佐郞)을 지냄.
1585~166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칠원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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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익(曺好益)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칭병으로 관직을 거절하다가 유배되었으나 유배지에서 학문 및 후학 양성에 힘써 학풍을 크게 진작시킴.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여러 관직을 제수받지만 대부분 사직함.
1545~1609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창원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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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덕(林象德)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냈으며, 저서로 강목체(綱目體)의 역사서인 《동사회강(東史會綱)》 등이 있음.
1683~171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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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주(任聖周)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학자. 본관은 풍천(豊川). 영조 때 시직(侍直) 등을 지내다 사직하고, 공주(公州) 녹문(鹿門)에 은거함. 주희(朱熹)의 이기론(理氣論)을 비판하고, 기일분수설(氣一分殊說)을 주장함.
1711~1788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공주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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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張維)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효종비(孝宗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로,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왕을 호종함.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여 양명학적(陽明學的) 사고방식을 보임.
1587~1638 한국>조선후기 , 서울ㅣ경기도>안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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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광(張顯光)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1576년(선조 9)에 재능과 행실이 드러나 조정에 천거된 이후로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대부분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 몰두하여 경학(經學)에 일가를 이룸.
1554~163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인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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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효(張興孝)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김성일(金誠一)ㆍ유성룡(柳成龍)ㆍ정구(鄭逑)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벼슬을 단념한 채 후학 양성에만 힘씀. 지평(持平)에 추증되고 경광서원(鏡光書院)에 배향됨.
1564~163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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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추(田有秋)
조선 광해군(光海君)~현종(顯宗) 때의 학자. 본관은 담양(潭陽)으로, 전영발(田穎發)의 아들. 장흥(長興)의 감호(甘湖)에 은거하여 평생 후학 교육에 힘썼으며, 감호사(鑑湖祠)에 배향됨.
1594~1674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장흥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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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원(全致遠)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ㆍ의병장. 본관은 완산(完山). 황강(黃江) 이희안(李希顔)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 이희안을 위하여 청계서원(淸溪書院)을 창건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계(草溪)에서 의병으로 활동함.
1527~159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초계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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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세(鄭經世)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냄. 주자학에 본원을 두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음.
1563~163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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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鄭逑)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임해군 옥사(臨海君獄事) 때 관련 인물의 석방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린 뒤 고향으로 돌아감. 경서(經書)ㆍ의학ㆍ천문ㆍ지리 등에 통달하고 특히 예학(禮學)에 뛰어남.
1543~162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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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양(鄭葵陽)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학자. 본관은 오천(烏川).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사(經史)와 정치 등에 두루 통달함. 학행으로 천거되어 현릉 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후진 양성에 힘씀.
1667~1732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천(永川)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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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성(鄭士誠)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ㆍ내자시 주부(內資寺主簿)ㆍ양구 현감(楊口縣監) 등을 지낸 뒤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힘씀.
1545~160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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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민(鄭秀民)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학자. 본관은 하동(河東). 정여창(鄭汝昌)의 증손이며,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일실된 정여창의 유고를 모아 《문헌공실기(文獻公實記)》를 간행하고, 저서에 《춘수당집(春睡堂集》등이 있음.
1577~165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하동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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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丁若鏞)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유형원(柳馨遠)ㆍ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實學)을 집대성함.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함.
1762~1836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강진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