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8,788건)
유의어(6,37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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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滄洲)@차운로 - 차운로(車雲輅)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차식(車軾)의 아들. 1583년(선조 16) 알성시(謁聖試)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의 현감(全義縣監)ㆍ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 등을 지냄. 시(詩)에 능하여 아버지 차식과 형 차천로(차天輅)와 함께 삼소(三蘇)에 비견됨.
1559~? 한국>조선후기 , 황해도>연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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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고(滄洲稿) - 창주유고(滄洲遺稿)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인 김익희(金益熙)의 문집. 1708년(숙종 34) 손자인 김진옥(金鎭玉)이 간행함. 목판본. 18권 7책.
170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용담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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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선생유고(滄洲先生遺稿) - 창주유고(滄洲遺稿)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인 김익희(金益熙)의 문집. 1708년(숙종 34) 손자인 김진옥(金鎭玉)이 간행함. 목판본. 18권 7책.
170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용담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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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집(昌緝) - 김창즙(金昌緝)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다섯째 아들. 조봉원(趙逢源)의 문인이며, 여섯 형제들이 문장의 대가(大家)라 육창(六昌)이라 불림.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된 뒤 학문에 전념하였고,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냄.
1662~171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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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집(昌集) - 김창집(金昌集)
조선 숙종(肅宗)~경종(景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협(金昌協)의 형. 노론(老論)의 대표 인물로,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냈으나, 경종의 후사로 연잉군(延礽君:영조)를 세웠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죽임을 당함.
1648~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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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추(滄醜) - 조속(趙涑)
조선 인조(仁祖)~현종(顯宗) 때의 서화가. 본관은 풍양(豊壤)으로, 조수륜(趙守倫)의 아들. 시ㆍ서ㆍ화 삼절(詩書畵三絶)로 일컬어지고, 영모(翎毛)ㆍ매죽(梅竹)ㆍ산수(山水)에 능했음.
1595~166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양주 , 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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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처사(滄海處士) - 허격(許格)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양천(陽川). 이안눌(李安訥)에게 수학하였는데 스승이 죽은 후 심상(心喪) 3년을 지내고 김상헌(金尙憲) 문하에서 종유(從遊)하였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굴욕적인 강화로 끝나자 통곡하고 학문을 그만두었음.
1607~1690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단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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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협(昌協) - 김창협(金昌協)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집(金昌集)의 동생.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은거함.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이기론(理氣論)을 절충한 학설을 주장하고, 《농암집(農巖集)》을 남김.
1651~170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경기도>과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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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흡(昌翕) - 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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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산(菜山) - 정약용(丁若鏞)
조선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유형원(柳馨遠)ㆍ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實學)을 집대성함.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함.
1762~1836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강진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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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눌(處訥) - 손처눌(孫處訥)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 본관은 일직(一直).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학문과 효행이 뛰어남. 왜란(倭亂)과 호란(胡亂) 때 창의하고, 난리 후에 향교 재건에 앞장섬. 대구(大邱) 청호서원(靑湖書院)에 배향됨.
1553~163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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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處亮) - 홍처량(洪處亮)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지낸 홍명현(洪命顯)의 아들로, 예조 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내고 《인조실록(仁祖實錄)》 편찬에 참여함.
1607~168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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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處仁)@방처인 - 방처인(房處仁)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 본관은 남양(南陽). 방덕일(房德馹)의 아들로, 1576년(선조 9)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함. 하항(河沆)의 《각재집(覺齋集)》에 차운한 시가 실려 있음.
1549~1595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구례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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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선생문집(芝山先生文集) - 지산집(芝山集)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인 조호익(曺好益)의 시문집. 9권 4책. 목판본. 1727년(영조 3)에 원집(原集)이 초간되고, 1883년(고종 20)에 후손 조광복(曺光復) 등이 원집과 속집을 합하고 부록을 증보하여 재편ㆍ간행함.
1727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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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砥相) - 이단하(李端夏)
조선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아들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름.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가운데 경학(經學)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저서에 《선묘보감(宣廟寶鑑)》ㆍ《외재집(畏齋集)》 등이 있음.
1625~1689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지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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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止善) - 오명립(吳名立)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유학. 본관은 보성(寶城). 1610년(광해군 2)에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나 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자 낙향하여 지선정(止善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함.
1563~1633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문의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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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정(止善亭) - 오명립(吳名立)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유학. 본관은 보성(寶城). 1610년(광해군 2)에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나 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자 낙향하여 지선정(止善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함.
1563~1633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문의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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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至誠) - 홍지성(洪至誠)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여경(餘慶) 홍유손(洪裕孫)의 아들. 사화로 고초를 겪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여 학문에 매진하고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특히 고문에 정통했음.
1528~1597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남양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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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持世) - 조위한(趙緯韓)
조선 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조양정(趙揚庭)의 아들이자 선산 부사(善山府使)를 지낸 조찬한(趙纘韓)의 형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냄.
1567~164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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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芝所) - 황일호(黃一皓)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황척(黃惕)의 아들로, 큰아버지 황신(黃愼)에게 출계함.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고, 의주 부윤(義州府尹)으로 있던 1638년(인조 16)에 명(明) 나라를 도와 청(淸) 나라를 치고자 모의하였으나 발각되어 청 나라 병사에게 피살됨.
1588~164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창원 , 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