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366건)
유의어(30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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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춘(大椿) - 박공량(朴公亮)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고령(高靈). 갑자사화 때 사형된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박은(朴誾)의 아들. 글씨에 능하여 많은 금석문(金石文)을 남겼고, 《중종실록(中宗實錄)》과 《인종실록(仁宗實錄)》편찬에도 참여함.
1494~155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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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형(國馨)@정난종 - 정난종(鄭蘭宗)
조선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훈구 세력의 중진으로,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ㆍ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냄. 초서(草書)와 예서(隸書)를 잘 쓰고, 특히 조맹부체(趙孟頫體)에 뛰어났음.
1433~148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동래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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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헌(葵軒) - 권주(權鑄)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의 손자이며 현복군(玄福君) 권렴(權廉)의 아들. 지신사(知申事)ㆍ밀직 제학(密直提學) 등을 지냄.
?~1394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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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道甫) - 이광사(李匡師)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학자ㆍ서예가. 본관은 진주(全州)로, 이긍익(李肯翊)의 아버지.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으로, 양명학(陽明學)에 조예가 깊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유배지에서 죽음. 서예에 뛰어나 원교체(圓嶠體)를 확립하고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침.
1705~1777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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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東皐)@김로 - 김로(金魯)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안동(安東). 대사헌을 지낸 김희수(金希壽)의 아들로 부자가 모두 명필로 유명하였으며, 그의 필적으로 글씨를 새겨 간행한 《이가서법(二家書法)》이 있음.
1498~154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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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군(東萊君) - 정난종(鄭蘭宗)
조선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훈구 세력의 중진으로,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ㆍ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냄. 초서(草書)와 예서(隸書)를 잘 쓰고, 특히 조맹부체(趙孟頫體)에 뛰어났음.
1433~148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동래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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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졸노인(懶拙老人) - 미우인(米友仁)
중국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의 문신ㆍ서화가. 아버지 미불(米芾)이 대미(大米)라고 불린 데 대해 소미(小米)라고 불림. 운산(雲山) 화법을 발전시켜 ‘미법산수(米法山水)’를 정착시키고, 초서와 예서에 뛰어남.
중국>송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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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蘭谷)@정선 - 정선(鄭歚)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화가. 본관은 광산(光山). 그림에 뛰어나 현실감 넘치는 독창적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하고, 금강전도(金剛全圖)ㆍ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등 많은 명작을 남김.
1676~1759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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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종(蘭宗) - 정난종(鄭蘭宗)
조선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훈구 세력의 중진으로,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ㆍ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냄. 초서(草書)와 예서(隸書)를 잘 쓰고, 특히 조맹부체(趙孟頫體)에 뛰어났음.
1433~148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동래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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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南峯) - 김홍도(金弘度)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ㆍ서화가.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로(金魯)의 아들.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 때 윤원형(尹元衡)에 의해 갑산(甲山)으로 유배되었다가 죽음.
1524~155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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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南窓) - 김현성(金玄成)
조선 명종(明宗)~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서화가. 본관은 김해(金海).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두루 능하였으며, 숭인전비문(崇仁殿碑文) 등 서예 유작이 전해짐.
1542~162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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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絿) - 김구(金絿)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글씨에 뛰어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ㆍ양사언(楊士彦)ㆍ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힘.
1488~1534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예산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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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신본(歐陽信本) - 구양순(歐陽詢)
중국 수(隨) 양제(煬帝)~당(唐) 태종(太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당 고조(高祖)가 즉위한 후에 급사중(給事中)으로 발탁되고, 태자솔경령(太子率更令)ㆍ홍문관 학사(弘文館學士) 등을 지냄. 글씨에 뛰어나 사람들로부터 해법(楷法)의 극칙(極則)이라 하여 칭송됨.
557~641 중국>당ㅣ중국>수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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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통사(歐陽通師) - 구양통(歐陽通)
중국 당(唐) 고종(高宗)~중종(中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구양순(歐陽詢)의 아들로, 아버지 못지않게 글씨로써 이름을 날림. 중서사인(中書舍人)ㆍ사예경(司禮卿) 등을 지냈으며 발해공(渤海公)에 봉해짐.
?~691 중국>당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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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國賓) - 이관징(李觀徵)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연안(延安). 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냈으나, 갑술환국(甲戌換局) 때 삭출됨. 해서(楷書)에 능했으며 만년에는 김생(金生)의 필법을 연구함.
1618~169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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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양(大歐陽) - 구양순(歐陽詢)
중국 수(隨) 양제(煬帝)~당(唐) 태종(太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당 고조(高祖)가 즉위한 후에 급사중(給事中)으로 발탁되고, 태자솔경령(太子率更令)ㆍ홍문관 학사(弘文館學士) 등을 지냄. 글씨에 뛰어나 사람들로부터 해법(楷法)의 극칙(極則)이라 하여 칭송됨.
557~641 중국>당ㅣ중국>수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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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곡(芹谷) - 이관징(李觀徵)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연안(延安). 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냈으나, 갑술환국(甲戌換局) 때 삭출됨. 해서(楷書)에 능했으며 만년에는 김생(金生)의 필법을 연구함.
1618~169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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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옹(芹翁) - 이관징(李觀徵)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연안(延安). 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냈으나, 갑술환국(甲戌換局) 때 삭출됨. 해서(楷書)에 능했으며 만년에는 김생(金生)의 필법을 연구함.
1618~169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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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琴齋) - 강한(姜漢)
조선 성종(成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ㆍ서예가. 본관은 진주(晉州). 학행과 뛰어나고 필법(筆法)이 정묘했으며,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교유함. 문하(門下)에서 정옥견(鄭玉堅)ㆍ권오복(權五福)ㆍ정사룡(鄭士龍) 등이 배출되었음.
145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산음ㅣ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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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祺)@김기 - 김기(金祺)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문인화가. 본관은 연안(延安).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김안로(金安老)의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을 지냄.
150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